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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파괴 또는 역발상. 지난 1999년 삼성전자는 한물 갔다는 여자 골퍼 박세리를 오히려 광고 모델로 써 대성공을 거뒀다. 이른바 '힘내라, 박세리' 캠페인. 프로야구에서는 김진욱 전 두산 감독이 2013시즌 중반 130㎞ 초반의 직구를 던지는 유희관을 선발로 전환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2군에서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났고, 끝까지 신뢰를 보내며 '느림의 미학'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은 말처럼 쉽지 않다. '껌은 충치를 유발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껌이 충치를 예방한다'는 '자일리톨'의 탄생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모두가 '아니오'를 외칠 때 '예' 할 수 있는 용기는, 확률적으로 쉽지 않다.
김 팀장은 2000년 불펜 포수로 현대에 입사해 2년 간 투수의 공을 받았다. 군에서 제대한 2004년에는 다시 현대에 들어가 배팅볼 투수로 공을 던졌다. 경기고 시절까지 포수를 했기 때문에 캐칭은 물론 피칭에도 큰 어려움은 없는 상황. 그런데 전력 분석팀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수차례 물었다. 그러다 당시 김경남 현대 전력분석 팀장에게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우고 싶다. 공부 좀 하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그가 배팅볼 투수 임무를 마치고 기호 수칙, 상황별 기록법을 어깨 너머로 배운 것도 이 때가 처음이다. 이후 지난 2008년 히어로즈가 창단 됐을 때는 어느덧 전력 분석팀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선배들을 따라다녔으니 벌써 수 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올해 팀장이 됐다.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요점만 추려서 전달하는 게 내 일이다"며 "불펜 포수와 배팅볼 투수를 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지금도 상대 투수가 오른손 일때 배팅볼을 던지곤 한다"고 밝혔다.
선수들에 강요는 안해, 선택은 선수의 몫
분석을 마치면, 선수들에게 전달할 차례다. 경기 직전 30분 간의 미팅 시간에 '알짜배기'만을 꺼내 놓아야 한다. 그는 "야수들의 경우, 상대 팀 선발을 어떻게 공략할지에 70% 비중을 둔다. 에이스들은 보통 1,2구안에 쳐야 승산이 있다"며 "통상 야수 전원을 모아 놓고 그 투수의 성향을 말하지만, 정말 중요한 경기 전에는 개인별로 1대1 미팅을 해 데이터를 건네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강요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게 있다 정도만 얘기한다"며 "우리가 전달할 수 있는 건 확률이다. 전력분석 팀에서 무조건 '직구'를 쳐야 한다고 해도, 막상 타석에 나가면 안 맞는 선수가 있다. 선수가 그 간 경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도 있어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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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은 지난주 파죽의 8연승을 달리며 3위 두산에 1경기 차로 따라 붙었다. 밴헤켄이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부상 선수도 수두룩하지만 창단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을 썼다. 여기에는 전력분석 팀의 공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불펜 포수였던 훈련 도우미가 지금은 특급 도우미로 자리매김 한 셈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공의 회전수를 실시한 체크할 수 있다고 한다. 투수구에 상관없이 이 투수의 회전수가 떨어지고 있다면, 바로 교체 타이밍으로 생각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며 "KBO리그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찾아오는 선수에게 확실한 정보를 주기 위해 우리 팀 전원(7명)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팀 간판 타자들에 대해 "박병호는 내가 일부러 많이 배팅볼을 던진다. 힘이 굉장히 좋고 타격 기술도 뛰어난데, 가끔은 '오늘 타이밍 어때요?'라며 자신의 감을 세밀하게 체크하는 선수"라며 "강정호는 재작년 초반 안 좋았을 때 영상을 통해 타격폼 교정을 했다. 바뀐 폼과 이전 폼을 비교 분석해 슬럼프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팀장은 "팀만 이기면 피로가 싹 가신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이 전력분석 팀 이름을 언급해 주면 거기에서 힘이 난다. 고생을 해도 선수들이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주는구나, 그렇게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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