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 공백 지운 김하성 "다른팀 갔다면 2군서 뛰고 있을 것"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7-02 07:20


6일 현충일을 맞아 서울 목동구장에서 KBO리그 두산과 넥센의 경기가 열렸다. 넥센이 10회말 김하성의 끝내기홈런으로 9대8 역전승을 거뒀다. 끝내기홈런을 날리고 있는 김하성.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6.06

박병호, 강정호, 서건창, 한현희, 김민성, 조상우, 유한준. 매년 히트 상품을 쏟아내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가 올해 내놓은 최고 신상품이 김하성이다.

야탑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입단한 1995년 생 유격수. 다들 지난 겨울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떠난 강정호 공백을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이 스무살의 프로 2년차 내야수는 풀타임 첫해에 올스타를 눈앞에 두고 있고 신인왕, 골든글러브를 바라보고 있다.

1일까지 72경기에 나서 타율 2할9푼3리(273타수 80안타)-13홈런-49타점-50득점-11도루를 기록했다. 2루타 22개(2위), 홈런 13개(공동 16위)를 때려 장타율이 5할1푼6리나 된다. 새로운 거포형 유격수 탄생이다. '리틀 강정호'라는 수식어가 아깝지가 않다.

KBO리그의 대표 유격수, '제2의 강정호'로 성장하고 있는 김하성을 1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1년 간 강정호 선배를 옆에서 보면서 선배같은 스타일의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내게 히어로즈 입단은 행운이었다. 다른 팀에 갔다면 지금 퓨처스(2군) 경기에 출전하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

1타석 차로 신인왕 자격을 얻은 사연

김하성은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22)과 함께 유력한 신인왕 후보다. 지난해 60경기에 출전해 59타석에 섰다. 타자의 경우 입단 후 '5년 이내, 60타석 이하' 출전 때 신인왕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조건을 가까스로 채웠다.

신인왕 자격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지난해 9월 엔트리가 확대되면서 1군에 등록된 김하성은 경기 전 티배팅을 하다가 근처에 있던 구단 프런트에게 신인왕 자격 요건을 물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툭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따져보니 그때까지 59타석을 기록하고 있었다. 시즌 종료까지 한달이 남은 상황. 아무리 못해도 한달 간 1타석 이상은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다음 시즌에 신인왕 자격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1번도 타석에 서지 못했다. 김하성은 그게 아직도 신기하다고 했다.


그런데 염경엽 히어로즈 감독은 비슷한 시점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염 감독은 "김하성이 2015년에 풀타임 출전한다면 신인왕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9월 이후 남은 시즌에 대수비, 대주자로만 활용했다. 사실 김하성을 타석에 세워야 하는 상황이 많지도 않았다"고 했다. '김하성 신인왕 만들기 프로젝트'가 지난해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얘기다. 김하성은 지난해 타율 1할8푼8리, 2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6일 현충일을 맞아 서울 목동구장에서 KBO리그 두산과 넥센의 경기가 열렸다. 넥센이 10회말 김하성의 끝내기홈런으로 9대8 역전승을 거뒀다. 끝내기홈런을 날린 김하성이 동료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6.06
지난해 5월 18일 롯데 자이어츠전을 통해 1군 데뷔. 출전 경기수나 1군 등록일수는 적은데 시즌 대부분을 1군 선수단과 함께 했다. '강정호없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던 히어로즈는 김하성을 일찌감치 '강정호 후계자'로 점찍었다. 구단 차원의 배려 속에 김하성은 1군 분위기를 익히고,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염 감독은 손목 힘, 풋워크가 좋은 김하성이 어깨도 강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히어로즈 입단은 행운이었다.

"다른 팀에 갔다면 지금 2군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워낙 잘 하는 선배들이 많아 첫해부터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신인 때는 2군 경기에 풀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1월 스프링캠프 때 염 감독은 김하성을 불러 세세한 설명없이 "올해는 너를 써야되니까, 준비를 잘 하라"고 했다. 짧고 울림이 큰 이 말이 김하성의 가슴을 힘차게 뛰게 만들었다.

선배 강정호처럼 되고 싶었다.

김하성 이름 앞에 꼭 따라다니는 게 선배 강정호다. 지난해 1년 간 강정호를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다. 함께한 시간이 짧았으나 훈련을 하면서, 또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걸 배웠다.

"우리 팀의 좋은 야구, 뛰어난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목표 의식이 또렷해졌다. 강정호 선배같은 스타일의 선수가 되고 싶었다. 선배처럼 야구를 하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하는 지 알게 됐다. 강정호 선배는 야구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성격, 멘탈을 갖고 있었다."

강정호는 수비 위주의 발이 빠른 전형적인 유격수가 아니다. 체격도 유격수답지 않게 컸다. 강정호처럼 당당한 체격, 힘을 갖고 싶은 마음에 김하성은 지난해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염 감독은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표가 잘 안나는데, 근육이 굉장히 좋다. 손목힘까지 좋아 많은 홈런을 때릴 수 있다"고 했다.


6월 30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KBO리그 넥센과 삼성의 주중 3연전 첫 번째 경기가 열렸다. 1회말 경기를 앞두고 거센 장맛비로 인해 경기가 우천 노게임 선언됐다. 우천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는 김하성.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6.30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제2의 강정호'라는 찬사.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다. 강정호처럼 타격 전에 배트를 앞으로 내밀어 돌릴 때가 있는데, 김하성은 자기도 나오는 습관이라고 했다.

지난 2월 히어로즈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잠시 머물렀던 선배는 "아프지 말고 잘 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김하성은 "구체적인 조언보다 그런 말이 좋았다. 강정호 선배는 그런 스타일이다. 엄청 쿨하다"고 했다.

2015년 올스타전 유격수 부문 팬투표에서 1위 질주.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고 했다.

지난 스프링 캠프 때 타격폼을 바꿨다. 예전에는 배트를 빳빳하게 세웠는데, 코칭스태프의 조언대로 귀쪽에 방망이를 댄 상태에서 타격을 시작한다. 염 감독은 "이전 타격자세로 갔다면 2할대 초반 타율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공을 때릴 때 배트 축이 팔보다 먼저 나왔는데, 손목이 먼저 나오게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겨울과 봄 심재학 타격 코치가 꼭 붙어서 김하성 타격폼 개조에 매달렸다.

한국시리즈 주역이 되고 싶다.

지난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때 딱 1경기에 나갔다. 4-2로 앞선 1차전 8회에 대주자로 출전해 도루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포스트 시즌 내내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때 딱 한 번 그라운드를 밟았다. 물론, 이 또한 코칭스태프의 배려라고 볼 수 있다. 김하성은 "그때는 엄청 긴장을 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올해는 한국시리즈에 나가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2015 KBO리그 kt위즈와 넥센히어로즈의 경기가 1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넥센 1회초 무사 1루에서 유재신 타석때 1루주자 김하성이 2루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수원=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6,14/
6월 6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경기다. 연장 10회말 두산 마무리 투수 노경은을 상대로 끝내기 1점 홈런을 때려 9대8 승리를 이끌었다. 프로에서 처음 때린 짜릿한 끝내기 홈런. 시즌 10호, 두 자릿수 홈런이라 더 특별했다.

"홈런 욕심을 내면 망가질 것 같다. 안타를 많이 치고 볼넷을 많이 골라 타율을 올리고 싶다. 3할 타율은 누구나 하고 싶고, 일단 페이스를 잘 유지해 2할9푼대 타율로 시즌을 마치고 싶다"고 했다.

야구 잘 하면 시샘이 따른다. 최근 도핑 파문이 터지기 전에 히어로즈 선수들을 음해하는 루머가 있었다. 심 코치는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몸을 만들고 준비를 하는 지 안다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김하성은 "모르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고 했다.

뛰어난 타격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김하성은 스스로 수비에 더 강점이 있다고 했다. 아직 실수가 많지만 경험 부족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타격도 그렇지만 수비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는 "타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박병호 선배의 힘, 서건창 선배의 컨택트 능력, 고종욱 선배의 빠른 발을 갖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는 김하성의 강한 손목힘과 어깨, 자신감을 부러워할 것 같다.

목동=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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