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꽃도 열흘 이상을 가지 못한다. 과거 한때 눈부신 업적을 남겼더라도 그걸 유지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과거의 명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현재,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금세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도태'되느냐, 다시금 '부활'하느냐. 중대한 기로에 선 두 올드보이가 있다. 한화 이글스 투수 송은범과 타자 김태완. 선수 인생의 갈림길에 선 두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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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렇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두 선수는 모두 한때 김성근 감독의 애제자였다. 송은범의 경우 김 감독이 SK 사령탑 시절(2007~2011)에 팀의 기둥투수로 활약했었다. 김 감독은 방황하던 송은범을 다시 그라운드로 불러들여 국내 최정상급 구위를 지닌 투수로 육성했다. 그 덕분에 송은범은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스타일로 'SK 왕조' 건설에 앞장섰다.
김태완과 김 감독의 인연은 더 위로 거슬러오른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고서도 당시 LG 트윈스 사령탑에서 해임된 김 감독은 한동안 제자들이 감독으로 있는 아마추어 야구팀을 순회하며 특별 인스트럭터로 어린 선수들을 지도했다. 김태완과는 이때 성균관대학교 야구부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빼어난 신체조건에 선구안과 스윙 궤적이 좋은 김태완을 상당히 아꼈다. 이후 SK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도 가끔 김태완에 대한 칭찬을 하곤 했다. 특히 김태완이 2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2008~2009년에는 "자기만의 리듬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칭찬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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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의 경고를 먼저 들은 쪽은 송은범이다. 이미 송은범은 올해 초부터 계속된 부진 때문에 2군에 내려간 지 오래다. 1군 무대에서 14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7.50에 1승5패 1세이브1홀드의 초라한 성적만 남긴 채 지난 7일 2군행을 통보받았다. 이후 2군에서 3번 등판했다. 여기서도 처참했다. 김 감독은 "신나게 얻어터졌다"고 표현했다. 9일 화성 히어로즈전 때는 4⅓이닝 만에 7안타 4실점(3자책), 25일 삼성 라이온즈전때는 3이닝 2안타 3실점(비자책), 28일 고양 다이노스전은 2⅓이닝 9안타 6실점(5자책). 이 3경기의 평균자책점은 무려 7.45나 된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김 감독이 내놓은 처방전은 '전면 개조'다. "지금은 다시 캠프를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술적으로는 투구 동작의 보완, 새 구종의 장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각성해야 한다"는 게 김 감독의 입장이다. 이런 부분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1군 무대로 돌아오기 어렵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34억원이나 주고 영입한 FA투수가 마치 육성선수처럼 시즌을 보내는 셈이다. 재정적 차원이나 팀 전력 차원에서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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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역시 마찬가지다. 수 차례 기회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자 김 감독도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사실 김태완에 대한 김 감독의 판단은 올해 여러번 바뀌었다. 지난 겨울 어깨 충돌증후군 증세로 현역 연장의 기로에 섰던 김태완은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한 채 홀로 재활을 해왔다. 김 감독도 이때까지만 해도 김태완이 복귀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김태완은 강한 의지를 앞세워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는 예상보다 빨리 정상 훈련을 재개했다. 시범경기 기간에 벌써 배트를 잡고 타격연습을 하면서 김 감독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일찍부터 김태완을 예비전력으로 손꼽고 있었다. 몸상태가 조금만 더 나아지면 1군 무대로 불러올려 오른손 대타 요원 혹은 지명타자로 쓴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실제로 김태완이 처음 1군 무대에 나선 것은 4월초부터였다. 4월9일 LG전때 대타로 1타석 등장했다. 하지만 삼진을 당하며 아직 실전 가동은 무리라는 결론을 남겼다. 김 감독은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4~5월을 보낸 김태완은 6월들어 본격적으로 1군 엔트리에서 팀 전력의 일원이 됐다.
그러나 이때도 실력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하기도 했지만, 6월 13경기에서 타율 2할8푼1리에 2타점만을 남겼다. 김 감독은 "지금 스윙 궤도에 문제가 있다.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지면 전혀 맞히지 못한다. 포수가 잡은 다음에 배트가 돌아나오는데, 타격폼 수정이 필요하다"며 28일 인천 SK전을 앞두고 김태완을 2군에 보냈다. 그리고선 "김태완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본인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변화없이는 기회도 없다는 뜻이다. 이건 송은범에게도 해당된다. 과연 한화의 두 '올드보이'들은 부활할 수 있을까. 시즌 후반 한화의 또 다른 변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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