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1일 잠실구장에서 김경문 NC감독은 머리를 조아리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기다려 줘서 감사하다. 그동안 좋은 경기를 못 보여드렸다. 1승의 귀중함을 알았다." 제 9구단 NC가 개막 7연패 끝에 LG를 상대로 1군 무대 첫 승을 거둔 직후였다. 그로부터 1년만에 NC는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을 경험했고, 이제는 쟁쟁한 형님들을 뒤로 하고 올시즌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악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선수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거액의 FA도 없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두터운 팬덤도 없다. 그래서일까. NC의 선전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멀리 내다보고 초석을 다지고, 거시적으로 팀을 만들어 매시즌 대비하고,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게하고, 때로는 고참도 기다려주고. 장기플랜으로 정석대로 다가섰을 뿐인데 어느덧 양손에는 떡이 쥐어져 있다.
2011년 3월 창단식에서 NC 김택진 구단주는 "청소년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작으나마 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기존 구단들의 텃세와 견제로 이사회는 자주 파행을 겪었고, 우여곡절끝에 1군합류가 결정되고도 순탄하지 않았다. NC는 야구에 스토리를 덧입히고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지난해 큰 성과를 거둔 뒤의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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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NC의 돌풍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아직 3분의 1을 갓 지난 시점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달 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KBO리그 kt와 NC의 경기가 열렸다. NC가 kt에 11대2로 승리하며 시리즈 스윕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후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NC 선수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2015.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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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초대를 받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뼘만 더 뻗으면 보물을 손에 넣을 것 같았지만 NC는 무리수를 두기보다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전력을 빠른 시간내에 상승시킬 수 있는 FA영입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대신 어린선수들까지 모두 데리고 미국 전지훈련을 나섰다. 충분히 단련시키고, 연마시키면 원석도 보석이 될 것이라 믿었다. 도중에 선수들을 한국으로 보내면서 긴장감을 잃지 않았던 스프링캠프, 차분하게 시즌을 대비했지만 주위에선 NC의 몰락을 예상했다. 엔트리도 줄어들고, 외국인도 1명 더 쓸수 없다. 이제는 신생팀이 아닌 또다른 강자, 다른팀도 충분히 대비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3년차 징크스에 대한 좋지 않은 조짐도 있었다. 원종현이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야 했고, 찰리와 이재학은 지난해에 비해 구위가 뚝 떨어졌다. 마무리 김진성마저 부상으로 주저앉았다. 이 와중에도 NC는 무리하지 않았다. 손민한 박명환에게는 충분한 휴식을 주고, 찰리와 이재학은 과감하게 2군으로 내렸다. 2군에 더 좋은 선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팀 전체를 생각한 김경문 감독의 결단이었다. 오히려 몇 명의 공백은 나머지 선수들이 10%, 20% 더 힘을 발휘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NC는 '컴 다운(calm down, 진정해)'을 외친다. 강자라는 얘기만 나오면 NC사람들은 손사래부터 친다. 농부가 소를 몰고 밭을 갈때 직선을 유지하는 비결은 시선을 멀리 고정시키는 것이다. 먼 산은 움직이지 않고, 건너편 나무도 늘 제자리다. 묵묵하게 제 할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결과물이 맺힌다. NC는 2년 남짓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똘똘하게 외국인선수를 뽑은 덕이라고 단정짓는 이도 있지만 용병 스카우트는 모든 팀이 심혈을 기울이는 구단에서 손꼽는 우선 과제다. 세상사 운칠기삼이라고 하지만 늘 '운칠'이 아닌 '기삼'으로 고수와 하수는 갈린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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