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놀라면서 보게 되네."
질 것 같으면서도 지지 않고, 포기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야구. 지난해까지 찾아볼 수 없던 한화 이글스의 끈질긴 야구에 팬들의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비록 그렇게 숨가쁜 경기를 하다 질 지라도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런 상황을 만들기까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시즌 처음으로 승률 5할을 넘어선 뒤 "요즘에는 덕아웃에서 자꾸만 놀라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선수들이 다들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 부터가 계속 그라운드를 보고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어떤 선수라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는 뜻. 김 감독은 그 사례로 지난 25일 대전 SK와이번스전의 9회말 공격을 뽑았다.
"2사 1루에서 이성열 타석 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 원래 이성열의 페이스가 썩 좋지 않다. 안 될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 편으로는 뭔가 마음 속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래서 보고 있는데 사구가 나온 것이다. 아마도 SK 윤길현이 큰 걸 의식해서 몸쪽으로 슬라이더를 붙였나보다. 하지만 너무 긴장해서 오히려 타자를 맞히고 말았다. 거기서부터 상황이 변했다."
|
이성열이 비록 안타를 친 건 아니었지만, 중요한 상황에 사구를 얻어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이성열의 사구는 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데뷔 첫 승을 따낸 투수 이동걸이나 역전끝내기 안타의 주역 김경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런 명백한 수훈선수 외에도 경기 맥락상 중요한 역할을 한 이성열에게도 내심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경기 흐름이 변했기 때문이다.
"자꾸 놀란다"는 김 감독의 말 속에는 이미 한화 선수들의 기량이 감독의 계산을 앞질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 감독은 전력 평가가 냉정하다. 개인의 기량에 대한 평가도 정확하다. 그런 데이터상으로 한화는 여전히 '위기의 팀'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한 가지 변수를 남겨두고 있었다. 바로 선수들의 투지와 조직력이다. 한 두 차례 어려운 경기를 뒤집는 과정에서 한화 선수들에게는 투혼과 끈기가 생겼다. 그게 데이터상의 전력을 뛰어넘는 힘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신을 놀라게 만든, 계산 결과를 뛰어넘는 힘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