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면이 우리 캠프의 성과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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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훈련을 이끌어 온 김 감독의 평가가 궁금했다. 40여일 전, 고치 스프링캠프에서 "이 선수들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걱정"이라던 그다. 지난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연습경기를 끝으로 공식 스프링캠프를 종료한 김 감독에게 물었다. "스프링캠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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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리를 김 감독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넥센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정예멤버로 라인업을 구성했기 때문. 서건창(1번, 2루수)과 유한준(3번, 중견수) 박병호(4번, 지명타자) 김민성(5번, 3루수) 박동원(9번, 포수) 등 주전급 멤버들이 무려 6명이나 있었다. 지난해 LG에서 뛰어 실력을 검증받은 외국인 타자 스나이더까지 나왔다. 게다가 '20승 투수' 밴헤켄이 선발로 나왔고, 문성현과 김영민 조상우 손승락 등이 차례로 투입됐다. 에이스와 필승계투조, 특급 마무리가 전부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한화는 여전히 1.5군급 선수들을 투입했다. 라인업에서 주전급 선수는 송광민(3번, 좌익수)과 최진행(4번, 지명타자) 김경언(5번, 우익수) 김회성(6번, 3루수) 정도였다. 장운호(1번, 중견수)와 황선일(2번, 1루수) 지성준(7번, 포수) 정유철(9번, 2루수) 등 낯선 이름이 라인업을 채웠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한화의 1.5군들이 넥센의 정예를 제압했다. 그것도 끝내기 역전승이었다. 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제 가슴속에 '이기는 방법'과 '이겼을 때의 성취감'이 심어진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미팅에서 내가 처음으로 칭찬을 했다. '너희들 (야구) 잘한다'고 해줬다. 스프링캠프에서 처음으로 한 칭찬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어린 선수들의 활약에 흡족했던 것.
특히 김 감독은 "무엇보다 이 경기에서 주목해야 할 장면이 있다. 바로 9회초 윤규진이 실점을 막은 것"이라고 했다. 이 경기 전체의 하이라이트였다는 뜻. 9회초를 보자. 3-3으로 맞선 한화는 마무리 윤규진을 6번째 투수로 내보냈다. 상대는 1번타자부터 나왔다. 5회 대타로 투입된 서동욱부터 나왔고, 김지수(2번) 문우람(3번) 이성열(4번) 윤석민(5번) 등 힘있는 타자들이 줄줄이 포진돼 있었다.
윤규진은 조인성과 이 상황에서 베테랑 포수 조인성과 호흡을 맞췄다. 첫 상대인 서동욱은 2구만에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그러나 김지수 문우람에게 각각 중전안타와 우전안타를 맞아 1사 1, 2루 실점위기에 몰린다. 타석에는 파괴력을 지닌 타자 이성열이 나왔다. 선택의 순간. 거를 것인가, 승부할 것인가.
한화 배터리의 선택은 '거르기'였다. 고의4구는 아니었지만, 까다로운 공을 던져 결국 볼넷으로 내보냈다. 장타력을 의식해 신중한 승부를 한 것. 만루작전도 의식했다. 그리고 윤석민을 상대했다. 이 때 조인성과 윤규진의 진가가 빛을 발했다. 조인성은 윤석민의 약점 코스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초구와 2구는 파울.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든 뒤 3구는 바깥쪽 낮은 코스로 빠진 볼.
그리고 4구째. 윤규진은 조인성의 사인을 받고 비장의 무기 포크볼을 던졌다. 내야 땅볼로 병살타를 유도하려는 의도였다.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기가 막히게 떨어졌고, 결국 윤석민은 유격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치고 만다.
김 감독은 "이 장면에 캠프 최대의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윤규진의 자신감 넘치는 호투와 조인성의 노련한 볼배합, 그리고 내야진의 유연한 수비가 함께 어우러져 실점을 막아냈고, 결국 역전승의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이런 장면을 선수들이 기억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모습"이라고 했다. 한화 스프링캠프의 결실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