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강정호는 워커 대체자, '4+1년' 계약에 담긴 의미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5-01-18 10:00


계약을 마치고 양측 모두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구단은 선수를 진정으로 원했고, 협상은 순조로웠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는 한국 프로야구 출신 1호 야수가 됐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각) 강정호의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구단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피츠버그 홈구장인 PNC 파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강정호의 모습을 소개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한 강정호가 홈구장인 PNC파크에서 배트를 들고 사진촬영에 임했다. 사진=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단 트위터
피츠버그의 강정호 영입, 1년간 공들인 작업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강정호와의 독점 협상권을 따낸 피츠버그는 협상 마감일(21일)을 나흘이나 앞둔 시점에서 계약을 마무리했다. 양측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좋았다. 강정호가 메디컬체크와 최종 계약을 위해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도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스몰마켓인 피츠버그가 최고액인 500만2015달러(약 54억원)를 따낸 것부터 큰 화제였다. 내야진이 꽉 차있고, 통 큰 투자를 하기 힘든 구조인 스몰마켓 구단임을 감안해 '위장입찰' 얘기까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진심으로 강정호를 원했다. 강정호의 영입과정을 상세히 소개한 지역 언론 피츠버그 포스트 가젯에 따르면, 피츠버그는 시즌 내내 복수의 스카우트를 보내 강정호를 관찰해왔다. 한 명의 관찰 기록만으로는 평가가 어렵기에, 복수의 스카우트가 크로스체크를 했다. 여기에 강정호를 상대한 외국인 투수들에게 그에 대해 직접 묻기도 했다.

여기에 유례 없는 타고투저 시즌을 보낸 한국 프로야구의 수치를 검증하기 위해 컴퓨터까지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메이저리거들이 많은 쿠바나 일본의 경우, 각국의 리그 성적을 통해 선수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수 자체가 없다. 게다가 지난 시즌은 기형적으로 공격적 수치들이 높아졌다. 결국 컴퓨터를 통해, 강정호가 한국에서 보여준 막강한 타격 지표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떻게 변화될 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것이다.


한국의 두 메이저리거가 만났다. 피츠버그에 입단한 강정호가 절친 류현진과 만났다. 류현진은 강정호가 넥센 선수들과 함께 훈련에 임하고 있는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훈련장을 찾아 친구와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류현진은 애리조나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강정호의 훈련이 끝나길 기다린 류현진이 강정호와 반갑게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프라이즈(미국 애리조나)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1.18
장기계약 물 건너간 닐 워커, 대체자로 선택된 강정호


강정호에 대한 확신을 가진 피츠버그는 본격적으로 영입에 나섰다. 내야진이 꽉 찬 상황에서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 선수들의 정리 문제와 직결돼 있다.

피츠버그 내야진에서 2루수 닐 워커와 1루수 페드로 알바레즈는 2016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한다. 특히 피츠버그 태생의 프랜차이즈 스타 워커의 거취와 강정호 영입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피츠버그 닐 헌팅턴 단장은 앤드류 맥커친이나 스탈링 마르테 같은 주축선수들과 장기계약을 이끌어냈다. 가능성이 확실한 선수는 몸값이 저렴할 때 장기계약으로 붙잡는 식이다. 하지만 워커의 경우, 고향에서 뛰는 프랜차이즈스타라는 명분이 있지만 장기계약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미 워커의 몸값은 피츠버그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헌팅턴 단장은 워커 측과 장기계약 논의를 했다. 하지만 당시 워커 측의 태도에 몹시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75만달러를 받은 워커는 올해는 연봉조정에 들어갔다. 구단은 800만달러를 써냈고, 워커 측은 900만달러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구단 측은 추가 협상 없이 연봉조정에 돌입할 계획이다.

피츠버그는 워커를 정리할 생각을 갖고 있다. 현지 언론을 통해 이러한 분위기가 솔솔 풍기고 있다. 워커를 트레이드시킬 수 있는 건 바로 강정호의 존재다. 올해 강정호는 벤치에서 출발할 예정이지만,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적응을 도와 주전급으로 쓴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내야진을 이끄는 3총사. 왼쪽부터 3루수 조시 해리슨, 2루수 닐 워커, 유격수 조디 머서. ⓒAFPBBNews = News1
4+1년 절충안, 강정호와 피츠버그 모두 웃었다

워커가 올 시즌, 혹은 내년 시즌 전에 트레이드되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피츠버그는 포스팅 금액을 감안해 강정호와 계약기간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려했다. 반면 강정호의 에이전트인 앨런 네로와 옥타곤 월드와이드는 4년 계약을 고수했다.

결국 절충안으로 '4+1'년 계약이 합의됐다. 4년간 1100만달러(약 118억5000만원)을 받고, 5년째엔 구단 측에 550만달러의 옵션이 달려있고, 옵션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바이아웃 금액 100만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결국 '4+1'년에 최소 1200만달러에서 최대 1650만달러에 달하는 계약이다.

양측은 모두 웃으며 계약을 마무리했다. 피츠버그 입장에선 강정호를 2년차 시즌부터 주전으로 기용해 최소 3년, 최대 4년을 쓸 수 있다는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강정호가 기대치를 충족시켜준다면, 계약기간 5년째 옵션 550만달러는 아까운 금액이 아닐 수 있다.

강정호 역시 적응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계약기간이 짧으면, 상대적으로 계약 첫 해부터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하지만 강정호는 첫 해 벤치에서 빅리그 연착륙을 시도하면 된다. 구단의 장기계획 안에 있기 때문에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5년째 옵션이 실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이아웃 금액이 있다는 장점도 있다.

헌팅턴 단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정호를 마이너리그로 보낼 의향은 전혀 없다(zero intent to send him to minor-leagues)"고 말했다. 포스팅 금액을 포함하면, 최소 1700만달러에서 최대 2150만달러를 투자한 선수기에 메이저리그에서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

이제 강정호는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4년 내에 몸값을 올려, 계약기간 내 빅마켓 구단으로 트레이드되거나 피츠버그에서 두 번째 FA를 노리는 게 이상적이다.

강정호는 계약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애리조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의 스프링캠프에서 함께 몸을 만들기 위함이다. 애리조나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밤 10시. 하지만 강정호는 피곤한 기색 대신 짧은 잠을 청하고, 이튿날부터 넥센 유니폼을 입고 훈련에 돌입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입단 협상 중인 넥센 강정호가 1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강정호는 13일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으로부터 "피츠버그가 강정호와 4년 1600만달러 계약에 합의했다. 5년째는 1년짜리 옵션까지 걸려 있는 계약"이라고 보도해 메이저리그 입단 가능성을 키웠다.
출국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강정호.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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