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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영웅의 대권 재도전' 위해 필요한 것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4-11-12 10:12


'영웅, 우승 도전'. 넥센 히어로즈의 포스트시즌 슬로건이었다. 첫 번째 도전은 아쉽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언제든 우승에 도전할 전력으로 성장한 건 확실해 보인다.

넥센은 올해 페넌트레이스 2위였다. 삼성 라이온즈와 똑같이 78승을 했지만, 1패가 더 많아 0.5게임차로 2위를 차지했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를 3승1패로 통과한 뒤, 통합 4연패에 도전한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진검승부를 펼쳤다. 비록 두 차례 뼈아픈 역전패와 함께 2승4패로 무릎을 꿇었지만, 넥센의 대권 도전은 프로야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1일 잠실구장에서 2014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삼성과 넥센의 경기가 열렸다. 삼성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서 있다. 경기 전 넥센 선수들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1.11
천덕꾸러기에서 영웅군단으로, 히어로즈의 위대한 도전

창단 7년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선수단을 인수받아 창단한 히어로즈는 초기에만 해도 구단 운영비가 부족해 선수를 팔아 연명한다고 눈총을 받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하지만 모기업이 없는, 야구단 자체가 하나의 기업인 히어로즈는 프로야구에 새로운 성공 모델을 제시했다. 운영상의 난맥은 있었지만, 네이밍 스폰서를 비롯한 각종 스폰서십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넥센이 돈벌이에만 집중한 건 아니다. 적극적인 트레이드로 선수단을 재편해갔다. 특히 타자친화적인 목동구장에 맞춰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을 대거 주전으로 길러냈다. 트레이드와 육성을 통해 확실한 팀 컬러를 만들어간 셈이다.

선수들을 보는 안목 또한 뛰어났다. '만년 유망주'였던 박병호, 평범한 백업 내야수였던 김민성, 그리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방출생 서건창 등은 넥센이 아니었으면 스타로 발돋움하지 못했을 이들이다.

MVP 후보를 4명이나 배출한 2014년, 넥센은 분명 위대했다. 고만고만한 선수들을 데리고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에서 어느덧 스타플레이어들을 다수 보유한 강팀으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8일 오후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201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과 넥센의 경기가 열렸다. 2회말 2사 2,3루서 넥센 유한준이 좌월 3점 홈런을 친 후 덕아웃에서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목동=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sun.com / 2014.11.08.
영웅이 보여준 한계 '허약한 마운드', 서서히 시작된 육성


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트레이드와 육성을 통해 유능한 타자들은 많이 길러냈지만, 투수 쪽은 그렇지 못했다. 쓸 만한 투수들은 트레이드 카드로 써버렸고, 남은 유망주들의 성장은 더뎠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그동안 사장됐던 '3선발 체제'를 꺼낸 것은 사실 고육지책이었다. 넥센의 부족한 선발투수 풀을 증명했다.

넥센의 포스트시즌 마운드를 이끈 이들은 선발 세 명과 필승조 세 명, 단 6명에 그친다. 이중 외국인 선수 밴헤켄과 소사를 제외하면, 토종 투수는 단 네 명이다. 넥센이 만든 '쓸 만한' 투수가 고작 네 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막강한 화력을 과시했던 타선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넥센은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면서도 선발투수 부재에 시달렸다. 포스트시즌 3선발 오재영과 부상으로 한국시리즈 때부터 합류한 문성현은 시즌 도중 '미니 스프링캠프'를 다시 치를 정도로 기대에 못 미쳤다. 그들의 공백을 메웠던 신인 우완 하영민, 좌완 금민철, 언더핸드스로 김대우는 여전히 가능성을 보인 수준이다. 강윤구 장시환 등 오랜 유망주들은 한계점만을 노출했다.

그래도 넥센은 최근 2년 동안 신예들을 길러내며 마운드에서도 희망을 찾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나 쉽게 무너졌을 불펜을 지켜준, 한현희와 조상우가 그들이다. 특히 조상우는 신인이던 지난해 1군 선수단과 동행하며 훈련한 효과가 컸다. 1군 등판 없이 코칭스태프가 1군에서 직접 관리하며 2014년을 준비했다.


201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라이온즈와 넥센히어로즈의 경기가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넥센 염경엽 감독이 삼성 7회말 2사에서 나바로에게 볼넷을 허용한 조상우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잠실=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11.10/
다음 타자는 하영민이다. 올해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뽑은 하영민은 신인답지 않은 배짱과 수준급의 제구력으로 1군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넥센은 지난해 조상우가 그랬듯, 하영민을 7월 이후 등판시키지 않았다. 1군 선수단에 데리고 다니면서 철저하게 관리했다. 이번엔 선발이다. 필승조 조상우에 이은 또다른 작품이 탄생할 지 주목된다.

준우승 아픔 속 얻은 소득, 성장할 히어로즈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그냥 패배일 뿐이다", "우승이 좌절되는 순간은 정말 비참하고 허무하다".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와 염경엽 감독의 말이다. 넥센은 첫 번째 도전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의 말처럼 아픔만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넥센은 충분한 기초체력을 길렀다. 극명한 약점으로 드러난 마운드만 보강해 나간다면, 언제든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패배 속에서 희망도 찾았다.

부진했던 넥센 타선 속에서 3번 타자 유한준은 유독 빛났다. 그동안 소리 없이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존재감 만큼은 다른 타자들에 비해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한준은 이번 한국시리즈서 타율 3할3푼3리(21타수 7안타) 2홈런 5타점으로 팀내에서 가장 많은 홈런과 타점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2홈런을 포함해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만 4개의 대포를 쏘아 올렸다.

유한준은 '승부를 결정 짓는 선수'라는 인상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넥센의 강타선의 확실한 옵션으로 자리했다고 볼 수 있다.


201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라이온즈와 넥센히어로즈의 경기가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넥센 마무리 손승락이 삼성 8회말 2사 만루의 위기에서 이흥련을 내땅 처리하며 위기를 넘기고 있다.
잠실=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11.10/
마운드에서는 마무리 손승락이 빛났다. 손승락은 팀 사정에 따라 등판시점이나 투구수를 유연하게 가져가는 '희생'을 보였다. 한국시리즈 3경기에서 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0. 실책으로 촉발된 5차전 패배,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5이닝 동안 던진 76구는 분명 투혼의 상징이었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자신만의 투구폼을 완성시킨 손승락의 내년 시즌이 더욱 기대된다. 또한 외국인 선수 밴헤켄과 소사 역시 3일 휴식 후 등판이라는 어려움을 이겨냈다. 내년 시즌에도 든든한 원투펀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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