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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좀 나눠먹자."
또 팀 장타율이 무려 5할5리다. 9개 구단 중 유일한 5할대 팀 장타율이다. 지난해 4할1푼3리(3위)에서 1할 가까이 올라갔다. 지난 시즌 팀 홈런(125개·1위)도 일찌감치 넘어섰다. 아무리 타고투저 강풍이 몰아쳤다고 해도, 쉽게 설명이 안 된다.
히어로즈가 막강 화력을 쏟아내면서, 부상자 없이 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요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지풍 코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천아시안게임 대표로 발탁된 내야수 김민성이나 서건창 유한준에 강정호 등 주축 타자들이 달라진 야구를 얘기하면서 이 코치를 빼놓지 않고 입에 올린다. 그를 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만났다.
결국 파워, 체력은 근육에서 나온다. 3년 전 체중 85kg을 유지했던 강정호는 현재 100kg 정도 나간다. 김민성은 2012년 시즌이 끝나고 6kg을 불렸고, 지난 겨울 서건창은 5~6kg가 붙었다. 또 유한준은 90kg에서 100kg(현재 98kg)으로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무작정 체중을 늘린 게 아니다. 고구마, 닭가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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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치는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이지풍 교실의 모범생' 김민성이 지난 해 15홈런을 터트리며 성과를 냈다. 9개(2010년)가 한시즌 최다 홈런이었던 유한준은 올 해 3번 타자로 나서 벌써 15개를 때렸다. 지난 2년 간 1홈런에 그쳤던 전형적인 1번 타자 서건창도 5홈런에 장타율이 5할3푼6리다. 지난 2년 간 서건창의 장타율은 3할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건창은 현재 2루타 공동 1위(30개), 3루타 1위(13개)에 올라 있다.
이 코치는 "백미나 밀가루의 탄수화물은 몸에 흡수되자마자 바로 인슐린이 분비돼 지방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고구마는 근육에 저장돼 근육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유)한준이가 음식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은 선택은 오른 것으로 판정이 났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함께 이뤄진 체중 증가, 근육량 증가 효과를 선수들이 체험하면서 '이지풍 추종자'가 늘었다. 타구가 이전보다 힘있게 날아갔고, 체력적인 문제가 줄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어디 팀,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메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선수가 왜 해야하는 건지, 어떤 몸 상태에서 하느냐가 중요하다. 몇 년 전 타율 2할9푼을 친 강정호는 3할 타율을 위해 타격 폼 수정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코치는 "불안감을 갖고 타격자세를 바꾸는 것 보다 체력을 키워 여름 무더위에 안타 10개를 더 때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더니, (강)정호가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렇다고 다른 팀에 비해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것도 아니다. 하루 40분 정도다. 대신 최상의 상태에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휴식이 중요한 이유다.
체중이 늘면 파워가 증가하더라도 민첩성, 순발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 코치는 이런 상식에 힘차게 고개를 가로 젓는다. "순발력과 민첩성도 결국 파워, 근육에서 나온다. 30m 달리기를 해보면 빠른 선수는 3.4초, 늦어도 4.0초다. 유한준은 3.6초를 찍던 선수인데 근육이 늘어났다고해서 4.0초가 나오는 건 아니다"고 했다.
커리어 하이를 찍으면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강정호의 유격수 수비가 둔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2루수 서건창은 늘어난 체중으로 도루왕 경쟁을 하고 있다. 김민성은 "이 코치님과 몸을 만들면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몸이 좋아지고 타구에 힘이 생기고, 체력이 강해지면서 타석에서 더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치어리더보다 운동량이 적은 야구선수
메이저리그는 우리보다 많은 162경기를 하는데도, 선수들의 체력 문제 얘기가 없다. 그런데 국내 야구에서는 여름만 되면 선수들이 체력저하를 걱정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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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로드리게스나 로저 클레멘스, 세미 소사, 마크 맥과이어, 배리 본즈의 공통점이 있다. 금지약물인 스트레이드를 사용한 것인데, 그들이 스테로이드를 찾은 건 지치지 않고 힘있게, 부상없이 경기를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금지약물을 안 하고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근육을 늘이는 것이다."
이 코치는 "8년 전 캠프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트레이너를 만났는데, 손바닥 굳은살에 테이핑을 하고 야간 훈련에 나서는 우리 선수를 보고 '미친 짓이다'며 기겁을 하더라. 훈련으로 정말 좋은 매커니즘을 습득했다고 해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그 기술을 발휘할 수가 없다"고 했다.
부상은 체력을 정도 이상으로 과하게 사용할 때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코치는 체력의 과사용을 통한 기술 향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다수의 야구인과 의견이 갈린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많은 지도자들이 혹독한 훈련, 많은 훈련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이 코치는 과다한 훈련이 '독'이라고 했다. 그는 "연습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적정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최고의 선수 중에서 골라 쓰고, 일본도 4000개가 넘는 고교 팀에서 살아남은 선수를 데려다 쓰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교팀이 60개에 불과하다. 있는 자원을 부상 당하지 않게 아껴 써야 한다"고 했다.
효율적인 훈련과 적절한 휴식을 강조해온 염경엽 감독과 궤를 같이 하는 생각이다. 히어로즈는 스프링캠프 기간에 하루 1시10분 배팅 훈련을 하고도, 3~4시간을 매달린 다른 팀 보다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히어로즈는 나머지 시간을 선수들의 자율에 맡겨, 스스로 필요에 따라 훈련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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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의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야구선수가 실제로 경기 중에 움직이는 시간은 18분 정도다. 강도가 조금 다르겠지만 치어리더보다 선수들의 활동량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적절한 휴식, 에너지 보충이 이뤄지면, 야구 종목 특성상 매일 체력적인 부담없이 경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코치는 "휴식이 가장 중요하다. 3~4시간 배팅 훈련을 하고 지친 몸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전혀 효과를 볼 수 없다. 훈련도 그렇고 경기도 그렇고, 집중력을 내려면 휴식이 필요한데, 우리 팀은 이런 면에서 좋은 시스템을 갖췄다"고 했다.
지난 겨울 전지훈련 기간에 히어로즈는 국내 팀으로는 처음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오전 7시에 실시했다. 이전에는 오전 훈련을 끝내고 점심식사를 한 후 진행했는데, 효율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코치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하니 선수들이 밤에 일찍 자야하고, 선순환이 이뤄졌다. 일어나서 바로 훈련을 하는 것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깨운 후 훈련을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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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치는 부산 태생이다. 다른 부산 사람처럼 어린 시절 야구에 빠져 살았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야구부가 있는 개성중학교에 진학해 테스트까지 봤는데, 키가 작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시절 진로를 고민했다. 가장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는 걸 찾다가 야구단을 떠올렸다. 3학년 2학기를 마친 2003년 겨울 현대 유니콘스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를 찾아가 실습을 했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4년 여름 유니콘스에서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이 코치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입사 첫 해 한국시리즈 때 처음으로 1군을 경험했고, 2010년 트레이닝 코치가 됐다.
야구단에 입사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많은 게 달랐다. 야구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다고 한다. 다른 구단 선수, 다른 종목 선수를 보면서도 어떤 식으로 하면 더 좋아질까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코치에게 바람을 물었더니 "민성이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건창은 꼭 200안타를 때렸으면 좋겠다. 또 한준이가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호와 병호 둘이 홈런 신기록을 세우면서 똑같이 공동 홈런왕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