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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인생 청산' 리오단, 잘 던질 수밖에 없다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4-06-27 06:42


26일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LG와 NC의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LG 선발 리오단이 무실점 호투를 선보였다. 8회를 마치고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는 리오단.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06.26

LG 외국인 투수 리오단의 대변신. 도대체 뭐가 리오단을 미운 오리에서 황금 백조로 변신시킨 것일까. 대단한 비밀이 숨어있느냐. 그건 아니다. 야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것을 입증하는 호투일 뿐이다.

리오단이 퇴출 위기를 벗어나 승승장구하고 있다. 리오단은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데뷔 첫 완봉승을 기록하며 팀의 4대0 승리를 이끌었다. 팀을 스윕 위기에서 구해내는 귀중한 호투였다.

리오단은 한국 무대 데뷔 후 첫 7경기에서 1승5패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7실점 경기만 2번이었다. 나올 때마다 난타를 당했다. 5월 11일 넥센 히어로즈전 패전 이후 결국 2군에 내려갔다. 퇴출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1군에 복귀한 뒤 기가 막힌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그 뒤에 숨은 얘기들을 소개한다.

'시한부 인생' 어떻게 잘 던지나

LG는 지난 1월 10일 리오단, 조쉬 벨과의 계약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두 사람이 얼마의 금액에 계약을 했는지 자세한 계약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다른 구단들처럼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을 축소하기 위한 의도였을까. 아니다. LG는 반대였다. LG는 리오단에게 규정상 최대금액인 30만달러(약 3억원)에도 못미치는 돈을 안겼다.

중요한 건 자세한 계약 내용이다. 리오단은 사실상 시한부 인생이었다. 1년 계약이 아니라, 6개월 계약 내용만 보장을 하고 이후 활약 여부에 따라 옵션 형식으로 보수를 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옵션을 모두 채워도 대단한 목돈을 만지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를 두고 LG를 욕할 수는 없다. 계약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수가 도장을 찍지 않으면 끝이다. 리오단이 이런 계약 조건에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자신이 그정도 수준의 선수임을 인정한 것이다. LG가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리오단의 초반 행보가 왜 어려웠는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일본프로야구 최강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 정예 멤버를 상대로 기가 막힌 투구를 했다.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중요한 건 리오단에게 차근차근 몸을 만든다는 것은 먼나라 얘기였다. 당장, 코칭스태프에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캠프에서 구속이 140km 후반대를 찍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는 달랐다. 자신이 던지는 한 경기, 한 경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리오단을 지배했다. 낮은 제구가 강점인 투수인데, 밸런스가 흐트러지며 공이 높은쪽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매경기 초반 잘던지다 중반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이유다. 여기에 팀 성적마저 바닥을 쳤다. 마음 편히 던질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양상문 감독의 한 마디 "너 안자른다"

리오단은 조계현 감독대행 체제 하이던 5월 11일 경기 후 2군에 내려갔다. 구단은 "3경기 이후 쉬는 일정이 있어 주말 마지막 경기 선발이었던 리오단을 엔트리에서 제외했다"고 했지만, 여기저기서 퇴출설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넥센전 종료 후 LG는 양상문 신임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양 감독이 새롭게 팀 구상을 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리오단에 관한 것이었다. 주 내용은 "리오단 교체를 생각하고 있는가"였고 양 감독은 "당장은 아니다. 지켜보겠다"는 답을 했다.

양 감독은 리오단의 1군 복귀전이던 5월 22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을 앞두고 "리오단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구부정한 몸을 펴 상체를 곧게 세워 던지게 했다"고 했다. 거짓말처럼 리오단은 호투를 했다. 당시 KIA전 승리를 따낸 이후 승승장구했다. KIA전 포함 5경기 2승1패. 승패가 없던 나머지 2경기는 각각 6이닝 2실점, 7이닝 1실점이었다. 터지지 않은 방망이가 문제였다. 패전을 기록한 6월 14일 SK 와이번스전도 6⅔이닝 4실점(3자책점)으로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그러더니 중요했던 NC전에서는 완봉승까지 거뒀다.

그렇다면 이를 조그마한 투구폼 하나를 수정해준 양상문 감독의 '매직' 효과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프로선수가 이런 원포인트 레슨 하나로 확 달라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힘든 일이다. 물론, 아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극적인 반전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요인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고 양 감독의 역할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양 감독은 2군에 가있던 리오단을 따로 불렀다. 면담을 했다. 양 감독이 얘기를 해보니 당장 자신의 거취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더란다. 양 감독은 리오단에게 딱 한 마디를 했다. "너 절대 안자른다"였다. 보통 하위권 팀에 새 감독이 부임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전력 보강 요청이다. 이미 시즌에 돌입한 상황에서 당장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외국인 선수 교체다. 하지만 양 감독은 구단에 외국인 선수 교체에 대한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겉으로 아니라고 해도, 만약 뒤로 교체 작업을 하면 선수들은 다 안다. 하지만 양 감독은 정말 교체를 건의하지 않았다.

구단도 리오단에 힘을 실어줬다. 리오단에 "올시즌 끝까지 함께 하자"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위와 제구가 나쁜 투수가 아니었다. 마음이 편해지니 잘 던질 수밖에 없다.


잠실=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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