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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징크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듯 했다. 메이저리그 LA다저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6)이 '긴 휴식 후 등판 부진'과 '초반 난조'의 두 가지 징크스에 무릎을 꿇었다. 애리조나전 실패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류현진은 지난 8월 31일 샌디에이고전 이후 11일간 휴식을 취한 뒤 12일 만에 다시 선발 마운드에 섰다. 허리 통증 때문에 한 차례 선발 등판을 미루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그러나 긴 휴식으로 류현진의 몸상태는 회복됐을지언정 제구력은 오히려 퇴보했다. 이날 류현진은 1회초부터 난타당했다.
1회초 선두타자 A.J.폴락에게 볼카운트 2S에서 3구째 커브를 던지다 중전안타를 얻어맞은 류현진은 후속 윌리 블룸퀴스트에게 2B2S에서 슬라이더를 던지다 또 좌전 안타를 맞았다. 블룸퀴스트는 볼카운트 2B2S에서 연속 2개의 공을 파울로 커트해내며 류현진을 괴롭혔다. 헛스윙을 유도하는 공이 자꾸 커트됐다는 것은 제구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는 증거. 결국 류현진은 블룸퀴스트에게 안타를 내줬고, 이어 폴 골드슈미트에게도 우전 적시타를 맞아 첫 실점을 했다.
이같은 초반 난조는 류현진이 11일의 휴식 후 등판한 탓으로 분석된다. 올 시즌 류현진은 두 차례 장기 휴식 후 등판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지난 5월 29일 LA 에인절스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뒤 9일을 쉬었고, 두 번째는 올스타 브레이크로 11일을 쉬고 나왔다. 첫 번째 장기 휴식 후 나온 6월 8일 애틀랜타전에서는 호투(7⅔이닝 6안타 1실점)했으나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고, 두 번째 휴식 후 나온 7월 23일 토론토전에서는 5⅓이닝 9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는데 타선의 도움 덕분에 승리를 거뒀다.
승패를 떠나 결과적으로 열흘이 넘는 장기 휴식을 보내면 제구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력이다. 결국 이날 애리조나전 역시 장기 휴식이 독이 된 케이스였다.
초반 난조, 극복할 수 없나
장기 휴식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올 시즌 내내 지적돼 온 초반 난조 현상이다. 이날 류현진은 1회초 집중 3안타와 내야 땅볼로 2점을 내줬다. 이어 2회에도 하위 타선에 장타를 허용해 추가 실점을 했다.
선두타자로 나온 7번 좌타자 헤라드로 파라에게 볼카운트 2B2S에서 5구째 93마일(시속 150㎞)짜리 바깥쪽 직구를 던졌다가 좌익선상을 흐르는 2루타를 얻어맞았다.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찔러넣은 승부구를 파라가 가볍게 밀어친 것. 여기에 LA다저스 좌익수 스콧 반 슬라이크의 포구 실책이 겹치면서 파라는 3루까지 내달렸다.
7번 크리스 오윙스를 2루수 땅볼로 처리한 류현진은 8번 터피 고즈위시에게 또 다시 좌전 2루타를 내줬다. 이때도 볼카운트 1S에서 2구째 92마일(시속 148㎞) 직구가 통타당했다. 결국 류현진은 1, 2회에 이날의 모든 실점을 다 하고 말았다. 시즌 내내 반복됐던 모습이다.
류현진은 지난 26번의 선발 등판 결과 1회부터 3회까지 가장 안 좋았다. 1~3회와 4~6회, 7~9회의 세 구간으로 경기 통계를 나눠본 결과 1~3회의 평균자책점(3.35)과 피안타율(0.269), 그리고 실점(29점)이 가장 안좋았다. 4회부터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초반에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뜻이다.
이런 통계치는 12일 애리조나전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1회 2점과 2회 1점을 내준 류현진은 3회부터 6회까지 5개의 안타를 더 맞았지만, 특유의 침착한 위기 관리 능력을 앞세워 추가 실점을 막아냈다. 결과적으로 초반 난조의 징크스가 여전히 류현진을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향후 남은 등판에서 류현진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