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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정대현(35)은 국내야구를 대표하는 '포커 페이스' 중 한 명이다. 안타를 맞아도 기분 나쁜 표정이 방송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다. '기분이 나쁠까, 안 나쁠까.' 대개 정대현도 사람이라면 기분이 나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표정으로 드러나질 않는다. 정대현은 그렇게 10년 이상 버티고 있다. 그는 삼성 특급 마무리 오승환(31)과 함께 국내야구를 대표하는 최강 불펜 투수다.
2001년 SK를 통해 프로 데뷔한 그는 2003년부터 불펜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았다. 이렇다할 큰 부상없이 10년 이상 롱런했다. SK에서 총 3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프로 통산 평균자책점이 1.95다. 오승환은 1.62.
정대현은 팬들에게 다가서는 편은 아니다. 대신 그는 "팬들이 같이 야구를 통해서 나와 즐거움을 나눴으면 좋겠다. 나의 사생활은 특별한 게 없다"면서 "야구에 집중하는 게 좋다. 따라서 팬들 앞에 잘 안 나게 된다"고 했다.
정대현에게 다시 물었다. "웬만해선 표정의 변화가 없는데 중요한 순간 적시타를 맞으면 어떤가."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굉장히 열받는다. 최근 진갑용 선배에게 실투를 던졌다가 적시타를 맞았다. 입에서 욕이 나왔다. 하지만 참고 다음 타자, 다음 공을 생각했다."
정대현은 이번 시즌 전반기 고전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4월 22일 1군 엔트리 말소까지 당했다. 그는 "프로와서 그렇게 잘 풀리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던진 공이 좋지 않아서 걱정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았고 허리도 안 좋았다. 시즌 초반 여러가지 요인이 겹쳤다. 하지만 핑계대고 싶지 않다. 그때도 내 실력이었다."
당시 정대현의 공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그의 주무기인 싱커와 커브가 예전같이 예리한 맛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정대현의 설명을 들어봤다. "너무 안 좋았다. 스트라이크를 던지기가 어려웠다. 이쪽 용어로 공을 때려야 하는데 모시기 바빴다. 싱커, 커브 어느 하나도 던지고 개운한 맛이 없었다. 21일 대구 삼성전에서 김상수에게 싹쓸이 적시타를 맞고 이거 안 되겠구나 싶었다." 다음날 2군으로 갔다. 정대현은 2군에서 20여일 시간을 보내고 1군으로 올라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 100% 전성기 때 구위를 회복한 건 아니다. 그는 야구를 잘 못하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정대현은 요즘 주변에서 "예전에는 거의 맞지 않았는데 요즘 맞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는 "나도 사람이다. 안 좋을 때 그런 소리가 나온다. 내가 좋아지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오게 돼 있다"면서 "10년 이상을 던졌다. 주변 얘기에 신경을 별로 안 쓴다. 난 야구장에서 내 걸 보여주고 싶은데 매우 예민한 편이라 어릴 때 지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요즘 야구가 처음 잘 되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공 하나를 원하는 위치에 잘 던지면 기분이 좋다. 그게 모여서 한 타자를 잘 처리하면 더 기분이 좋아진다. 그에게 지금 마무리, 중간 계투 어떤 보직도 상관이 없다. 시즌을 마무리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중간 계투로 나선다. 정대현은 "승 세이브 홀드 같은 기록은 큰 의미가 없다. 내가 올라갔을 때 출루가 없고, 점수를 안 주면 된다. 예전에 아주 잘 던졌을 때는 1이닝 무실점의 기쁨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1이닝 무실점에서 오는 기쁨이 아주 다르다"고 했다.
정대현은 평소엔 말수가 적다. 말을 나눌 기회 조차 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멍석을 깔자 마음 속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만 잘 하면 롯데는 성적이 날 것 같다"며 웃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