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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스즈키 이치로는 노련했고 천재적이었다.
올해 40세가 된 이치로는 이미 전성기를 지났음에도 이날 만큼은 류현진을 의식한 듯 집중력을 발휘하며 타격과 수비에서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했다. 류현진은 경기전 "구로다, 이치로보다는 평소처럼 한타자 한타자 집중하는 것만 생각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두 일본인 선수들에게 판정패하며 시즌 7승에 실패했다. 구로다는 6⅔이닝 8안타 2실점으로 시즌 7승째를 따냈고, 전날까지 타율 2할6푼5리에 머물렀던 이치로는 4타수 3안타 3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류현진으로서는 0-2로 뒤지고 있던 6회 이치로에게 기습적인 홈런 한 방을 얻어맞은 것이 뼈아팠다. 6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이치로는 류현진의 2구째 몸쪽 낮은 코스로 제구된 88마일(142㎞)짜리 직구를 가볍게 잡아당겨 우측 펜스를 넘어가는 솔로포로 연결시켰다. 다저스 타선이 이어진 7회초 2점을 만회한 터라 만일 류현진이 이치로에게 홈런을 내주지 않았다면 적어도 패전을 면할 수도 있었다.
이치로는 류현진이 강판한 뒤에도 기세를 이어갔다. 다저스가 2점을 뽑아 2-3으로 추격한 상황에서 이치로는 7회말 1사 만루서 다저스 왼손투수 파코 로드리게스의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커브를 가볍게 밀어쳐 빗맞은 좌전안타로 주자 2명을 불러들이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밀어쳤다기보다 기가 막히게 '건드렸다'는게 적절한 표현일 정도로 천재적인 컨택트 실력을 선보였다. 이치로는 수비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다. 8회초 애드리언 곤잘레스의 깊숙한 플라이 타구를 뒤로 달려가며 점프 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이기도 했다.
류현진이 이치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다. 당시 일본과의 1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류현진은 이치로를 만나 안타를 허용했다. 이후 4년만의 맞대결에서 설욕을 별렀으나, 13년째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치로의 천재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