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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상승세. 거침이 없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음지에서의 궂은 일이 훨씬 많은 불펜 투수의 숙명. 그 중에서도 특히 이동현은 LG 불펜에서 티 안나는 고생을 가장 많이 하는 투수 중 하나다. 필승조지만 역할이 광범위하다. 이길 때도 나가고 희망이 남아 있는 경우 질 때도 나간다. 불펜의 핵 정현욱의 앞에 나갈 때도 있고, 그 뒤에 나갈 때도 있다. 이렇다보니 불펜 대기가 잦다. 본격적인 여름 승부 속 체력 관리가 쉽지 않은 전천후 마당쇠 역할. 그렇다고 큰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다. 억울한 마음은 없을까? "(하하) 그런 거는 전혀 없습니다. 언제든 준비하고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 제 일인걸요. 제가 나가서 팀이 이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습니다."
그는 불펜 투수치곤 오랜 이닝을 소화하는 투수다. 그렇지만 그가 마운드에 있는 시간은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템포가 짧은데다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순간이 마치 폭풍처럼 지나간다. 삼심대 고참 투수가 됐지만 '로켓'이라 불렸던 야생성은 고스란히 살아있다.
고교 최고를 다투던 거물급 투수 출신. 그리고 화려한 프로 데뷔. 거침 없이 성장해가는 괴물 투수로 아스팔트 깔린 미래를 예약한듯 했던 이동현. 최고의 해를 보낸 그에게 대가처럼 부상이란 불청객이 찾아왔다. 세번의 수술과 세번의 재활. 다시 마운드에 서기까지…. 그의 야구인생은 삶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프로 생활 절반을 고통스러운 재활 속에 보내야 했던 야구 선수. 얼마나 많은 눈물의 밤과 다짐의 세월을 보냈을까. 어쩌면 다시 설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마운드. 다시 뿌릴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150㎞. 이 모든 좌절을 희망으로 돌려준 마운드는 이동현에게 소중한 '기적'이다.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프로 2년차 약관의 청년으로 맹활약했던 2002년 포스트시즌. 강산이 변했다. 이동현이 재활을 거듭하며 다시 마운드에 우뚝 서는 동안 소속팀 LG는 4강을 10년째 놓쳤다. 무심하게 흐른 세월 속에 어느덧 삼십대에 접어든 이동현. 아프지 않은 팔로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감사함 외에 딱 하나 덧붙이고픈 바람이 있다. 11년만에 포스트시즌 마운드에서 있는 힘껏 볼을 뿌려 보는 것. 그 절실함이 하늘에 닿는 순간 LG 야구는 감동이 있는 한편의 인간 드라마가 될 것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