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뜨거운 돌풍을 일으키며 다른 팀들을 제물삼아 단독 1위를 질주하던 넥센이 수상하다.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등장하는 천적관계처럼 유난히 KIA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올해 KIA는 팀이 아무리 흔들려도 넥센 앞에서는 자신감이 타오르고 있다. 도대체 두 팀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것일까.
새롭게 부임한 염경엽 감독의 지휘 아래 팀 체질을 전면적으로 개편한 결과다. 선수 구성이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코칭스태프를 맞이해 스타일을 보다 역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바꾸면서 다른 팀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넥센의 변모는 팀별 상대전적의 패턴 변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해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른바 '천적팀'과의 우열관계를 완전히 뒤바꿨다. 이는 곧 경쟁력의 강화를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던 팀을 연이어 격파하면서 단숨에 강팀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벽이 있다. 바로 KIA다. 올해 넥센은 다른 8개 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KIA에만 상대전적이 열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사흘간 목동구장에서 치러진 KIA와의 주말 3연전에서 1승2패로 위닝시리즈를 내주면서 결국 시즌 상대전적 3승5패로 밀렸다. 앞으로 맞붙을 기회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지만, 유일하게 상대전적에서 밀린다는 것은 분명 넥센이 KIA에 뭔가 약점을 잡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목동구장 징크스와 나이트의 딜레마
그렇다면 과연 KIA는 넥센의 어떤 취약점을 노려 우세를 점한 것일까. 올 시즌까지 치른 맞대결을 살펴보면 두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목동구장 징크스'다. KIA 타자들이 목동구장을 편안하게 여기고 있다. 목동구장에서는 방망이가 뜨겁게 타올랐다.
올해 KIA는 목동구장에서 치른 6경기에서 3할1푼5리(216타수 68안타)의 팀타율에 5홈런 3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구장별 타율에서는 대전(3경기, 0.353)과 마산(2경기, 0.360)에만 뒤질 뿐 홈런과 타점은 원정구장 가운데 가장 많다.
KIA가 목동구장에서 이렇게 뜨거운 타격감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일단 타격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넥센 투수들이 그만큼 공략하기 쉽기 때문에 넥센의 홈구장 목동에서 잘 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목동구장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동구장 좌우 펜스거리는 98m이고, 중앙펜스까지는 117m인데, 대전구장이나 마산구장(좌우 97m, 중앙 117m)보다 약간 클 뿐이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장타가 많이 나왔다.
KIA가 넥센에 강한 또다른 이유는 '나이트 딜레마'가 작용한 점도 있다. 넥센의 1선발인 브랜든 나이트가 KIA타자들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나이트는 올해 KIA전에 3번 투입됐는데, 2패를 떠안으며 평균자책점이 무려 10.05(14⅓이닝 16자책점)나 된다. 피안타율도 0.355에 삼진 7개를 잡는 동안 볼넷을 12개나 내줬다. 분명 이상한 현상이다.
특히 공동 1위팀인 삼성전의 기록과 살펴보면 나이트가 KIA에 무척이나 약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나이트는 올해 삼성전에도 3번 나왔는데, 2승 무패에 평균자책점은 0.92였다. 볼넷은 9개였고, 탈삼진은 15개나 됐다. 극과 극의 모습이다.
이런 점 때문에 KIA 타자들은 나이트가 만만하다. KIA 타자들은 "나이트를 1선발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한다.
광주일고 선후배 감독, 경력의 차이가 승부에 영향을 미치나
이렇듯 전력적인 면들로 인해 넥센은 KIA앞에서는 작아지기만 한다. 여기에 또 한가지. 사령탑의 경력 차이도 어느 정도는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고도 볼 수 있다. 광주일고 선후배인 KIA 선동열 감독과 넥센 염경엽 감독은 선수 시절 뿐만 아니라 감독 경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감독 8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선 감독이 초보 감독인 염 감독에 비해 노련미에서 한 수 앞서는 것도 어느 정도는 두 팀의 승패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분석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9일 새벽 넥센 내야수 김민우의 무면허 음주운전사고가 터졌다. 이날 경기에서 넥센은 팀 창단후 최다인 실책 5개를 기록하며 자멸했다. 아무래도 김민우 음주사고가 좋던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넥센이 KIA와의 천적관계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정규시즌 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상당히 불리한 모습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목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