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거포의 위대한 탄생, 왜 어려울까?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3-05-30 10:29 | 최종수정 2013-05-30 10:30


위닝시리즈를 위한 결전 LG와 SK의 경기가 26일 잠실에서 펼쳐 졌다. 0대0으로 맞서던 9회던 무사 1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정의윤이 좋아하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봉중근은 공 하나만 던지고 승리 투수가 되는 행운을 안았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3.05.26/

KIA와 NC의 2013 프로야구 주말 3연전 마지막날 경기가 26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열렸다. 4회말 2사 1,2루 KIA 김주형이 좌익수 왼쪽으로 흐르는 역전 2타점 2루타를 치고 있다.
광주=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5.26/

LG, KIA는 기분 좋은 일 하나가 있다. 학수고대하던 오른손 거포의 재발견. 그 가능성이 열렸다. LG 정의윤(27)과 KIA 김주형(28). 오랫동안 터지지 않았던 무한 잠재력이란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흘러넘치기 직전이다. 오랜 인내 속에 기다려온 카드. 팀으로선 귀하디 귀한 오른손 거포다. LG, KIA 뿐 아니다. 모든 팀이 목 말라하는 우완 거포 만들기. 하지만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나무배트 등장과 함께 거세된 오른손 거포

없는게 아니라 없앴다는 표현이 맞다. 벌써 10여년 전부터 일선 아마 팀들에는 왼손 타자 붐이 일었다. 원래 왼손 타자가 아님에도 일선 지도자들은 왼쪽 타자가 되도록 권유했다. 우투좌타나 스위치 히터가 우수수 늘었다. 이는 지난 2004년부터 고교야구에서 시작된 나무 배트 사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홈런이 뜸해지자 득점 공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세밀한 작전 야구가 한방으로 대량득점을 하는 '뻥 야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우투수와의 승부에 유리하고 1루 베이스에 가까운 좌타자. 환경적으로 더 대접받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왼손 타격을 선호하게 됐다. 매력 발산이 힘들어지면서 주전 보장이 되지 않는 오른손 거포들은 점차 무대 뒷편으로 사라져갔다.

교타자와 대비되는 거포의 성장지체

거포의 성장지체. 메커니즘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프로와 아마 투수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아마 시절 난다 긴다하던 타자도 프로의 높은 벽에 한계를 느끼게 마련. 그 갭은 장거리 타자일수록 더 커진다. 현역 시절 교타와 장타를 겸비한 강타자로 명성을 떨쳤던 KIA 이순철 수석코치는 이런 말을 한다. "아마에서 입문한 타자들은 프로 무대에 맞는 테크닉을 터득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이를 위해서는 힘을 빼고 툭툭 맞히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교타자에게 유리한 환경이에요. 타격의 문제점은 욕심에서 나오는데 장거리포는 아무래도 이를 버리기가 쉽지 않잖아요."

타자의 성장은 약점 줄이기 과정. 교타자들이 짧은 스윙을 통해 빠르게 약점을 메우는 것과 달리 거포들의 풀 스윙은 변화구 적응 등에 있어 큰 구멍을 드러낸다. 게다가 대부분의 거포들은 몸집이 크고 느린 편. 다른 쓰임새도 없다. 타석을 벗어나 수비나 주루에서도 장점을 발휘하기도 힘들다. 빠른 교타자들이 수비나 주루 등 다른 분야에서 출전 기회를 잡으며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과 대조적이다. 실전 기회의 차이. 성장 속도의 차이를 만드는 환경이다.

천번의 인내가 필요한 작업

거포 만들기는 어렵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만큼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한다. 팀 타선의 미래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발견되는 타자라면 눈을 질끈 감고 투자를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 필요하다. 어떤 결실도 비용 없이 이뤄질 수 없는 법.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각 팀 사령탑들은 그만한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단기간에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자리보전이 힘들다. 당장 타석에서 '선풍기'를 붕붕 돌리고 있는 거포 유망주를 인내심 있게 기용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다. 일부 팬 등 주위의 맹렬한 비난도 뚝심을 방해하는 요소. 그런 면에서 젊은 사령탑 LG 김기태 감독의 지론은 눈여겨 볼 측면이 있다. 그는 감독 부임 첫해였던 지난해 "나와 코치들은 언젠가 떠날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없어도 LG 야구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팀의 미래를 위한 유망주 기용의 이유에 대한 설명. 실제 그는 자신의 철학을 꾸준히 실천했다. 최근 무섭게 변하고 있는 정의윤은 김 감독의 뚝심과 희생의 결과다. 김 감독은 시즌 초 정의윤이 부진할 때도 꾸준한 기회를 통해 실전 경험을 쌓도록 배려했다. 틈 나는 대로 개인 면담을 통해 자신감을 심어줬다. 눈빛이 달라졌다. LG를 떠난 뒤에야 대폭발했던 오른손 거포의 쓰라린 역사. 김기태 감독의 뚝심 속에 성장중인 정의윤이 그 공식을 바꿔놓을지가 관심사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