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응용 감독이 새벽에 산에 오르는 이유는?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13-05-28 19:23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2013 프로야구 경기가 18일 대전구장에서 열리는 가운데 한화 김응용 감독이 덕아웃에 앉아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3.05.18/

'노감독이 새벽에 산을 찾는 까닭은?'

실로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한 한화 김응용 감독에게 올 시즌 그라운드는 '인고'(忍苦)의 공간이다. 쟁쟁한 멤버들로 우승을 밥먹듯 하던 해태와 삼성 사령탑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심기가 불편하다보니 경기 전 덕아웃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납득이 안되는 판정이 나오면 득달같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심판과 대거리를 하는 모습도 좀처럼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지난 25일 대전 삼성전에서 2회 정현석의 런다운 때 삼성 수비진의 주루 방해를 따지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왔을 때 한화 팬들은 박수를 치며 노감독의 '팬 서비스'를 즐길 정도였다.

28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만난 김 감독은 "(해태 사령탑 시절) 항의를 좀 자제하려고 그라운드로 안 뛰어나오면 광주팬들이 '감독이 이제 배가 불렀구나'라고 하며 실망을 한다. 그래서 팬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번 나오기도 했다"며 "대차게 한번 항의를 하고나면 다음날 광주 시내가 들썩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 임찬규의 물을 끼얹은 세리머니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우리팀 선수들이 차라리 나한테 해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승리만 한다면 기꺼이 물벼락도 맞겠다는 얘기다.

어쨌든 심판에 대한 어필은 선수단에 대한 '군기'를 잡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시즌 초반 13연패에 빠질만큼 승리보다는 패배가 많아 가뜩이나 주눅이 든 선수들의 기를 어떻해든 살리기 위해 큰소리 한번 제대로 치지 않는 상황에서 좀처럼 항의를 하기도 쉽지 않다.

대신 김 감독이 주로 찾는 곳은 숙소 인근 산이나 공원이다. 대전 숙소에서는 인근 계족산을 주로 오르고 서울에서는 강남 국기원 뒷산, 부산 금정산, 광주 무등산, 창원 팔용산 등이 주로 김 감독이 애용하는 공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오르는 것은 물론 경기 후 숙소에 들어가 잠이 오지 않을 경우 플래시를 들고 나설 정도다.

김 감독은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곳에 간 후 그라운드에서 못다한 소리를 지른다. 선수에 대한 불만도 한번 내뱉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사람이 없는줄 알고 소리쳤다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랄 때도 있다"며 웃었다. 산이나 주변 공원은 김 감독에게 일종의 '힐링' 공간인 셈이다. 김 감독은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상당히 강해보이지만 속으로는 무척 여린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마음 한편에선 측은함도 느껴진다.

과연 올 시즌 산 대신 그라운드에서 김 감독이 마음껏 포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물 세례를 기꺼이 맞을 수 있을까. 물론 이는 한화 선수들의 분전에 달려 있다.
잠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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