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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긴 흘렀나보다. '코끼리' 김응용 감독에겐 달라진 프로야구가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한화 김응용 감독(72)에겐 '노회하다'란 표현이 어울렸다. '경험이 많고 교활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 과거 해태와 삼성을 거치면서 선수 개개인과 팀, 그리고 심판까지 들었다 놨다 했던 '승부사' 김 감독에게 잘 어울렸던 말이다.
취재진을 만날 때만 해도 알 수 있다. 프로야구는 경기 전 팀 훈련이 진행될 때, 덕아웃에서 취재가 진행되는 게 통상적인 관례다. 감독은 덕아웃에서 훈련을 지켜보며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다.
패배가 많아지면서 덕아웃에서 김 감독을 보기 어려워졌다. 개막 후 13연패하는 과정에선 아예 양해를 구했다. 연패를 끊어낸 이후 8승1무7패를 기록했지만, 김 감독은 "3연전 중에 첫 날만 하자"는 식으로 취재진과 접촉을 피했다.
8일 창원 마산구장. 3연전 첫 날이었던 전날 덕아웃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가 다시 한 번 취재진과 만났다. 전날 승리 덕이었다. 경기에 대한 얘기가 한창 진행됐다. 올해 한화 사령탑을 맡은 뒤로 돋보였던 특유의 자조 섞인 유머가 쏟아졌다.
선발 이브랜드의 조기강판 얘기가 나오자 "작살날까봐"라고 답하는 식이다. 어떤 투수가 흔들린다는 말엔 "내가 올라가서 안 흔들리게 잡아줄까"라며 웃는다. 일흔 넘은 나이에도 웬만한 젊은 이들보다 유머러스하다. 이때 갑자기 그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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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다운 기질도 많이 누그러졌다. 그는 "옛날엔 지면 못 살았는데 요즘엔 부처님 비슷하게 됐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과거 심판을 배로 밀치며 과감한 어필을 하던 그는 없었다. 김 감독은 "항의하면 뭐하나. 아니 항의할 일이 없어. 우리 심판들이 메이저리그보다 잘 보는데 항의할 게 어디 있다고"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발달한 TV 중계 기술도 그의 변화에 한 몫 했다. 경기 내내 표정 변화가 큰 김 감독의 표정 변화를 보는 것도 팬들에겐 하나의 즐거움이다. 예전이었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는 "옛날엔 기껏해야 카메라 2대 갖고 중계했다. 그땐 잠깐 하품도 하고 딴 짓 하다가도 카메라가 비추면, 딱 '폼' 잡으면 됐지"라며 "근데 이젠 너무 많아서 숨어도 다 잡더라. 어느 카메라가 잡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한화 선수들의 기복 심한 경기력이 매일 그를 들었다 놨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고 편안해졌다. '어떤 선수가 기분 좋게 해주나'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수시로 잘 하다 못 하다 해서…"라고 답하더니 이내 "어제도 무사 만루에서 죽는 정현석이 제일 미웠다가, 9회 결승타 치니까 제일 예뻐 보이더라"며 웃었다.
김 감독은 "내일도 나오실거죠?"란 취재진의 질문에 "오늘 이기면~"이란 말로 대신한 채 손을 흔들었다. 올시즌, 달라진 '코 감독'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까. 아마 그를 들었다 놨다 하는 한화의 경기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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