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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코끼리에게 한화 야구는 너무 낯설었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3-03-31 18:52 | 최종수정 2013-04-01 06:17


한화 김응용 감독이 30일 부산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경기 중 껌을 씹고 있다. 역전패하는 바람에 입이 더 말랐을 지 모른다. 부산=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3.30/

'코끼리' 김응용 감독(72)은 9년 만에 그라운드로 복귀했다. 독수리 한화의 지휘봉을 잡았다. 겉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 긴장될 수밖에 없는 롯데와의 개막전(30일)에서 다잡았던 경기를 내줬다. 롯데 박종윤에게 끝내기 희생 플라이를 맞아 5대6으로 역전패했다. 31일 개막 두번째 경기에선 롯데 손아섭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맞고 똑같이 5대6으로 졌다. '코끼리'의 입이 바짝 말랐다. '야구는 모른다'지만 이런 '멘붕(멘탈 붕괴)' 상황은 이전 그의 야구 인생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희귀한 장면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이틀간 '낯선 야구'를 경험했다.

코끼리 감독은 '호랑이' 해태(현 KIA)와 '사자' 삼성의 사령탑을 지냈다. 해태에서 9번, 삼성에서 1번, 총 10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 프로야구 32년 역사에서 김 감독 보다 우승을 많이 한 감독은 없다. 감독 통산 승수도 1476승으로 1위다. 당분간 누구도 이 기록들은 깨기가 어렵다.

그동안 김 감독이 지휘했던 해태와 삼성은 당대 최강팀이었다. 해태 시절엔 선동열 이강철 김정수 임창용 등의 막강 투수진과 김봉연 김성한 이순철 이종범 같은 타자들로 중무장했다. 삼성 시절에도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 같은 시대를 대표했던 선수들과 함께 했다.

독수리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명장은 개막 2연전에서 참담한 경험을 했다. 그는 경기 전 "첫 경기고 마지막 경기고 모두 이기고 싶다. 그런데 맘대로 안 된다. 이기기 위한 모든 작전을 쓰겠다"고 했다. 그말 그대로 됐다. 김 감독은 복귀 첫 경기를 꼭 이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건 아니다. 결국 한화 선수들이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개막전에선 9회말 철석같이 믿었던 마무리 안승민이 블론세이브를 기록, 경기를 망쳤다. 2안타 2볼넷 그리고 박종윤에게 끝내기 희생 플라이를 내주며 2실점으로 무너졌다. 31일 경기에선 중간 불펜 송창식이 9회말 5-5 동점에서 손아섭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두들겨 맞고 무릎을 꿇었다. 롯데 불펜 김사율은 2경기 연속 마지막 투수로 등판, 행운이 따른 2승을 챙겼다.

김 감독은 첫 경기에서 다양한 작전을 걸지 않았다. 번트 지시도 없었다. 주로 타자들에게 믿고 맡겼다. 한화 타자들의 타격감이 나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신경쓴 부분은 한발 빠른 투수 교체였다. 김 감독의 제자인 선동열 KIA 감독은 "투수 교체에는 정답은 없는데 한발 빨리 할 때가 나중에 결과적으로 더 좋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는 김 감독으로부터 마운드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아서 나온 말이다.

김 감독은 개막전에서 호투했던 선발 바티스타가 위기에 몰리자 두번 째 투수 프로 2년차 임기영을 올렸다. 그가 올라와 첫 타자 강민호를 사구로 출루시키자 그 다음엔 좌완 윤근영을 올렸다. 좌타자 장성호와 박종윤을 상대한 윤근영을 내리고 다시 송창식을 투입했다. 8회에도 5번째 투수 김광수가 2사에서 나와 김문호를 볼넷으로 출루시키자 마무리 안승민을 곧바로 투입했다.


한화 불펜은 타자들이 11안타 3볼넷으로 뽑은 5점을 지키지 못했다. 한화 마운드는 볼넷을 무려 8개, 사구 2개를 내주며 자멸했다. 마운드로 보면 분명 '저질 야구'였다.

김 감독은 속타는 심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조한 듯 예전과 달리 껌을 경기 내내 씹었다. 그는 기자들이 "껌을 언제부터 씹었느냐"고 묻자 "예전에는 안 씹었는데 씹기 시작했다. 롯데 씹을려고 씹는다. 이거 롯데껌이다"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말 이후 껌을 바로 뱉었고, 31일 경기에선 껌을 씹지 않았다. 그는 역전패한 후 "선수들이 열심히 했다. 투수들이 볼넷이 너무 많았다"고 짧게 말했다. 2연패를 한 후에는 말수가 더 줄었다. "아쉽다."

한화는 31일 2-5로 끌려가다 중심 타선의 집중력으로 매서운 뒷심을 보여주었다. 8회 2점을 따라붙었고, 9회 김태균의 적시타로 동점(5-5)을 만들었다. 하지만 또 불펜이 무너졌다. 한화 투수들은 10안타 7볼넷을 기록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시즌 전 한화를 9구단 NC와 함께 꼴찌 후보로 예상했다. 김 감독은 경기 전 그런 예상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개막 2연전에서 한화가 왜 약체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특히 마운드, 그 중에서도 허약한 불펜은 아킬레스건이었다. 선발이 아무리 잘 던져도 불펜이 경기를 망치면 이기기 힘든게 야구다. 그렇다고 이닝이터형 선발 투수들이 여럿 있는 것도 아니다.

김 감독은 그동안 객관적으로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해왔다. 한화는 선수 개인 역량이 다른 팀들과 비교했을 때 약하다. 과거 해태나 삼성과 비교가 안 된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평소 이런 얘기를 종종 했다. "선수들이 잘 하면 감독이 별로 할 일이 없다. 선수들이 아주 잘 하면 감독의 잘못된 작전까지도 묻힐 때가 있다."

사직구장 덕아웃에서 만난 김응용 감독은 과거 보다 훨씬 부드러운 이미지를 풍겼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 사장까지 지낸 야구계의 대표 원로다. 그런 명장이 올해 적지 않은 마음 고생을 할 것 같다. 개막 2연전에서 그 조짐이 물씬 풍긴다. 선수들이 경기를 풀지 못하면 아무리 명장이라도 스타일을 구길 수밖에 없다.
부산=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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