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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3선발이었다. 하지만 첫 등장부터 에이스급 위용을 떨쳤다. NC의 세번째 외국인선수 에릭 해커(30) 얘기다.
에릭은 지난 13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LG와의 시범경기에 선발등판했다. 국내 무대 공식경기 데뷔전이었다. 성적은 4이닝 무실점. 안타는 1개 허용했을 뿐이었고, 볼넷은 없었다. 5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탈삼진 능력까지 선보였다. 그야말로 '완벽투'였다.
NC는 내년까지 기존 구단보다 한 명 더 많은 3명의 외국인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 홀수구단 체제에서 1~3선발의 경쟁력은 가장 큰 변수다. 외국인선수로 1~3선발을 채운 막내구단 NC를 만만히 볼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에릭의 강점은 '볼끝'이다. 전지훈련 때부터 공을 받아온 NC 포수진은 세 외국인선수의 장점이 다르다고 말한다. 1선발로 점찍은 좌완 아담(26)의 경우는 제구력이 일품이다. 우완 찰리(28)는 지저분한 공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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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에서 TV중계를 본 많은 이들이 느꼈을 것이다. 에릭의 직구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꿈틀'댄다.
사실 투수의 직구는 직선으로 가는 공이 아니다. 공을 쥐는 방법, 그리고 릴리스 시에 손가락에 어떻게 힘을 분배하는지, 팔꿈치와 어깨 스윙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무브먼트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직구라 불리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지만, 상황에 따라 컷패스트볼이나 싱커의 효과를 주는 경우가 있다.
에릭 역시 그런 유형이다. 투구동작으로 봤을 때, 검지와 중지에 주는 힘 덕에 좋은 무브먼트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 포심과 투심 패스트볼을 적절히 섞어 던지고, 좌타자 상대로는 몸쪽으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컷패스트볼을 구사한다. 그의 춤추는 직구를 보면, '살아있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변화구 역시 좋다. 특히 120㎞대의 커브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각은 조금 덜할지 몰라도 오히려 홈플레이트 근방에서 빠르게 떨어진다. 커브에서 슬라이더의 효과를 일정 부분 보는 형태다. 첫 등판에서도 꿈틀대는 직구와 함께 이 커브를 결정구로 사용했다. 헛방망이를 이끌어내기 좋은 구종이다.
에릭과 계약을 맺을 때 NC는 앞서 영입한 아담과 찰리와 달리 '경험'을 첫번째 가치로 꼽았다. 두 20대 투수는 가능성을 봤다면, 두 차례나 수술경력이 있는 에릭은 관록을 더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단순한 관록은 아니다. '대박'의 가능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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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에릭이 에이전트에게 "한국프로야구의 신생팀이 너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에릭은 별 고민 없이 NC행을 선택했다. 지난해는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등판까지 하면서 빅리거에 대한 희망이 생길 때다. 아시아문화에 관심이 많은 부인 때문이었다. 에릭은 예전부터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에서 뛰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에릭은 미국에서 "내가 등판하는 경기마다 동료들이 '에릭이 나가면 우린 이긴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장점으로도 '자세'를 꼽은 그다. 물론 처음 보여준 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1회초 야수들의 실책 2개가 연달아 나왔음에도 묵묵히 자기 공을 던져 실점을 막은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때 그 자신감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