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최정상에 오른 뒤에는 필연적으로 하산이 기다리고 있다. 오르는 과정에서의 고난과 최정상을 밟은 후의 뿌듯한 성취감이 아쉽지만, 정상에 오른 뒤에는 자연스럽게 하산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등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한 분야의 최정상에 오르면 자연스러운 내리막을 받아들여야 한다. 안전하고 명예롭게 무대의 뒤로 물러나는 것이야 말로 존경받는 명사들의 참모습이다.
미국 스포츠전문케이블 ESPN은 지난 2일(한국시각)"로드리게스가 미국 마이애미에 위치한 바이오 제네시스의 앤서니 보슈 원장에게 주사를 맞았다"면서 "보슈 원장이 직접 로드리게스의 집을 방문해 금지약물 주사를 놔줬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에 앞서 마이애미 지역지 '마이애미 타임스'는 "마이애미 지역의 안티에이징 클리닉으로 알려진 바이오 제네시스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제공했다"고 특종보도했다. 바이오 제네시스의 고객 명단에는 바톨로 콜론(오클랜드)과 야스마니 그란달(샌디에이고) 넬슨 크루스(텍사스) 지오 곤살레스(워싱턴) 등과 함께 로드리게스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즉각 대변인을 통해 이와 관련한 내용을 모두 부정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드리게스가 '사면초가'에 빠진 신세가 됐다는 점이다. 아직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관련 정황들이 속속 로드리게스의 금지약물 복용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당시 로드리게스도 금지약물 복용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로드리게스는 당시 이를 인정하면서 "텍사스 이적 후 성적부진에 대한 압박감으로 2001~2003년에 걸쳐 잠깐 사용했을 뿐 그 이전과 이후에도 약물에 손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런 즉각적 고백과 사과는 미국 사회의 인정을 받았고, 이후 로드리게스는 다시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고백 역시 거짓 고백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 사회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렇다면 왜 로드리게스와 같은 초특급 스타들이 굳이 약물에 손을 대야 했을까. 정황상 로드리게스는 2004년 양키스로 팀을 옮긴 뒤에도 로드리게스는 지속적으로 금지약물에 손을 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58경기에 나와 타율 3할1푼4리에 54홈런 156타점을 기록한 2007년은 뚜렷하게 약물 복용의 징후가 포착된다. 전년도와 이듬해의 성적에 비해 홈런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데다 이 성적을 발판으로 이듬해 10년간 2억7500만달러(한화 약 2989억원)의 초특급 FA계약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결국 최고성적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명예욕이 금지 약물 복용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명예가 나락에 떨어진 본즈나 클레멘스 팔메이로 등과 비슷한 상황이다. 명예욕과 끝없는 욕망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성적하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막기 위해 편법에 손을 뻗친 셈이다. 결국 이들은 한순간에 대스타가 됐지만, 금세 추악한 불명예를 짊어지게 되는 불편한 진실앞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A로드 역시 그 중 한명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