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한국 프로야구계는 '감독 교체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최근 3년간은 이런 경향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현재 1군에 참가하고 있는 8개 구단은 최근 3년 사이 전부 감독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출범 이후 올해까지 31년 동안 양 전 감독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도 경질되거나 재계약에 실패한 감독들은 누가 또 있을까. 스포츠조선이 31년간의 기록을 토대로 '좋은 성적 내고도 경질된 감독 베스트 5'를 뽑아봤다.
참고로 재임기간 및 팀 순위, 그리고 잔여계약기간 등을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양 전 감독은 4위였다. 그보다 더 억울했을 법한 인물들이 3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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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말 SK의 러브콜을 받고, SK의 제3대 감독으로 취임한 김성근 감독은 특유의 야구철학과 강도높은 훈련을 통해 팀을 오늘날의 강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SK는 김 감독 부임 첫 해인 2007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고 이때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밟았다. 김 감독 역시 재임기간 5년간 한국시리즈 우승 3회, 준우승 1회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재계약과 관련해 구단과 갈등을 겪던 김 감독은 2011년 8월 17일 돌연 '시즌 후 퇴진'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응해 구단은 김 감독을 다음날 공식 해임했다. 성적으로보면 재계약이 당연시 됐고, 5월경 구단 최고위층이 재계약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결국 SK와 김 감독은 5년간의 동행을 끝으로 결별했다.
재임기간과 그동안 달성한 성적을 보면 단연 김 감독이 '좋은 성적 내고도 경질된 감독' 1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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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는 야구'를 삼성에 뿌리내린 선동열 감독은 부임 첫 해인 2005년 곧바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팀에 안겼다. 이어 2006년에도 한화를 물리치며 삼성 역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그런 선 감독은 2연속 우승 이후 '세대교체'를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그러나 세대교체 과정에서 베테랑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많이 은퇴하는 바람에 전력이 일순간 급감했고, 더불어 팬들의 반감도 샀다. 지역 정서도 악화됐다. 결국 삼성은 2007~2008년에는 4위에 머물렀고 2009시즌에는 5위를 하며 '13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받았다.
그럼에도 삼성은 2009년 시즌 중 선 감독과 계약을 5년 연장하는 통큰 결정을 했다. 이에 힘을 얻은 선 감독은 2010년 다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전 전패를 당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뒤틀렸다. 너무나 일방적인 패배로 인해 그룹 최고위층에서 실망했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때마침 그룹의 조직개편이 겹치면서 구단 사장과 단장이 전부 바뀌자 선 감독도 함께 팀을 떠났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하고 난 직후인데다 계약기간이 무려 4년이나 남아있었다는 점, 그리고 팬 및 지역정서 악화라는 '성적 외적인 이유'로 팀을 떠났다는 점이 선 감독을 2위에 올려놓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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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는 한국 야구의 큰 어른이자 프로야구 원년도 우승을 달성한 '명장' 김영덕 감독이다. 1983년 말, 삼성 제2대 감독으로 부임한 김 감독은 전년도 4위였던 팀을 곧바로 84년 전반기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어 후반기에 이른바 '져주기 게임'의 불명예를 뒤집어쓰면서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집념을 보였다. 그러나 '쉬운 상대'라고 택했던 롯데에 오히려 덜미가 잡히며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그래도 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나마 삼성에 첫 '우승'의 영예를 안긴 김 감독은 86년에도 정규시즌 최고승률(0.654, 70승37패1무)을 달성하며 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버틴 해태에 1승4패로 지며 또 준우승에 그쳤다.
재임 3년간 '2위-1위-2위'의 좋은 성적. 게다가 3년째에는 시즌 최고승률을 달성했지만, 삼성은 한국시리즈 종료 후 한 달 뒤 박영길 감독을 새로 영입했다. 이유는 단 하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해서'였다. 당시 삼성의 '1등 주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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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호 감독은 부임 첫 시즌인 2011년 롯데를 사상 첫 정규시즌 2위로 이끌더니, 올해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꺾으며 최근 4연속 포스트시즌 첫 관문 탈락이라는 롯데의 '단기전 징크스'를 깼다. 하지만 이런 성적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절대목표 앞에선 무의미했다. 롯데는 결국 양 감독을 경질했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의 케이스는 3위를 차지한 김영덕 전 삼성 감독과 상당부분 유사하다. 짧은 재임기간임에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냈다는 점과 그럼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는 점이 매우 닮았다. 어쩌면 현장을 바라보는 롯데 구단의 인식 수준이 약 30년 전의 삼성과 흡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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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전 KIA 감독 역시 2위를 차지한 선동열 전 삼성 감독과 비슷하게 '성적 외적인 이유'로 팀을 떠난 경우에 해당한다.
부임 첫 시즌은 6위로 다소 저조했지만, 이듬해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KIA에 통산 10번째 우승을 안겼다. KIA는 3년 재계약을 조 감독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우승 후유증이 너무 깊었다. 주전들의 부상이 계속 이어지며 이후 시즌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우승 다음해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해 실패하더니 2011년에는 다시 4위를 차지해 2012시즌에 대한 희망을 보였다.
하지만 조 감독은 결국 계약 마지막 해를 채우지 못했다. 2011시즌 후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원하는 지역 여론과 팬들의 거센 요구에 구단 수뇌부가 교체를 결정했다. 비슷한 이유로 한 해전 삼성을 떠났던 선동열 감독이 조 감독으로부터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점이 꽤 아이러니컬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