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새 선장 김시진, 감독 아닌 승부사가 돼야 한다

이지현 기자

기사입력 2012-11-06 11:37 | 최종수정 2012-11-06 13:52



불과 1년 전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와 신인왕을 뽑을 당시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한 일이 오늘 벌어졌다. 2008시즌 부터 우리 히어로즈라는 팀명으로 리그에 참여한 넥센 히어로즈가 정규시즌 신인왕과 최우수 선수를 한꺼번에 배출한 것이다. 그 동안 히어로즈의 이미지는 유망한 선수들을 부유한 구단들에 내다 팔아서 살림에 장만하는 가난한 구단의 이미지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히어로즈는 다시 한 번 팬들과 전문가들을 놀래킨다.

선수를 팔아서가 아니라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선수들을 사들여서이다. 이택근과 FA계약을 맺으면서 그를 친정으로 복귀시켰고, 메이저리그 핵잠수함 김병현을 전격 영입한 것이다. 그리고 시즌이 종료되던 시점, 히어로즈는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팀을 이끈 김시진 감독을 전격 해임하면서 야구계를 또 다시 놀래킨다.

그리고 11월 5일, 넥센 히어로즈는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와 신인왕을 동시에 배출하면서 올 시즌 서프라이즈 퍼레이드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를 차지한 박병호와 신인왕을 차지한 서건창 모두 기나긴 무명의 설움을 딛고 일구어낸 성과라 2군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였다.

이들의 잠재력을 터뜨리게 이끌어준 스승 김시진 전 히어로즈 감독은 제자들이 마침내 영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동안 국내 최고 인기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와 전격적으로 감독 계약을 맺는다. 박병호, 서건창의 정규시즌 MVP, 신인왕 등극은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었고, 김시진 감독 또한 양승호 감독의 퇴진 이후 차기 자이언츠 사령탑으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런데 감독 계약 발표 시점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앞당겨졌다.

당초 아시안 시리즈가 끝난 직후 자이언츠의 차기 감독 발표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정규시즌 MVP와 신인왕이 발표되던 날, 자이언츠는 기습적으로(?) 김시진 감독 선임을 발표하였다. 공교롭게도 제자들의 잔치에 스승이 더 뉴스의 주목을 받는 결과가 연출되고 말았다.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는 명분하에 양승호 감독을 퇴진시킨 자이언츠가 선택한 카드가 김시진 감독이라는 점은 어찌보면 명분이 다소 약해 보인다. 김시진 감독은 오랜 기간 동안 투수코치를 역임하면서 투수 조련사로 명성을 떨쳐왔다. 하지만 감독을 역임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 경험을 하지 못했다. 물론 맡았던 팀들의 당시 형편이 4강을 노릴 만큼 넉넉하지 못했고, 오히려 히어로즈는 기존의 주축 선수들마저 내다 팔면서 전력 보강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감독으로서 포스트시즌을 단 한 차례도 치르지 못했다는 부분은 내년 시즌 김시진 감독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구단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11월 중순부터 팀을 이끌게 되는 김시진 감독이 3개월여의 기간 동안 팀내 유망투수들을 어느 정도 육성해낼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를 거치는 동안에는 오랜 기간 동안 몸담아 왔기 때문에 선수들을 조련하는 것이 한층 수월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자이언츠는 여러모로 환경이 다른 팀이다.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는데도 일정 기간이 요구될 수 밖에 없다.


1990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루고도 재계 라이벌 LG트윈스에 4연패로 허무하게 물러난 정동진 감독을 해임시킨 삼성 라이온즈는 당시 태평양 돌핀스 감독에서 물러난 김성근 감독을 새로 영입하였다. 목표는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선수들의 의식개조와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김성근 감독의 손길을 거친다면 라이온즈의 체질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서였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부임 첫 해인 1991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4차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어렵게 플레이오프에 올라갔지만 빙그레 이글스에게 별다른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1승 3패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92년에는 다시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롯데 자이언츠에게 2게임 연속 완봉패로 물러나는 초유의 진기록을 남기고 시즌을 마감하였다.

아무리 명 조련사인 김성근 감독이라도 팀의 문화에 쉽사리 녹아들지 못한 바람에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2013년을 맞이하게 될 김시진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선수들로부터 신망받은 성품을 지닌 덕장이긴 하지만 팀의 체질을 바꾸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역선수 시절 3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비운을 안고 있는 김시진 감독은 20년 만에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고 선수시절 이루지 못한 우승의 꿈을 감독으로서 이루기 위해 출정한다. 공교롭게도 롯데 자이언츠는 자신의 평생 라이벌이자 우승의 기회 앞에서 자신을 좌절시킨 최동원이 몸담았던 팀이기도 하다. 자신의 평생 라이벌이자 동갑내기 스타인 최동원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던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과연 최동원의 못다한 꿈을 동갑내기 라이벌 스타인 김시진 감독이 이루어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시진 감독 본인부터 감독이 아닌 승부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할 필요가 있다. <양형진 객원기자, 나루세의 不老句(http://blog.naver.com/yhjmania)>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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