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과 가족, 나를 변화시킨 두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역할을 했길래 만년 유망주에 불과했던 박병호를 최고스타로 바꿔놨을까. 박병호는 이날 수상 소감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가운데에는 부모님과 장인장모님, 그리고 아내 이지윤씨 등 가족에서부터 김시진 전 넥센 감독과 박흥식 타격코치를 비롯한 넥센 코칭스태프까지 다양했다. 자신을 데려온 넥센 이장석 대표도 감사인사 대상에 포함됐다.
박병호에게 직접 이 중 가장 오늘의 성공에 기여한 두 사람을 뽑아달라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박병호는 "넥센과 가족"이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다. 어찌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딱 두 사람을 고를 수 있을까. 박병호는 "뭉뚱그려서 기회를 준 넥센 전체와 끝까지 나를 믿고 지원해준 가족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답했다.
성남고 시절의 박병호는 단연코 또래 집단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선수였다. 포수이자 4번타자를 맡았던 박병호는 3학년 시절이던 2004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화순고를 상대로 4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넘버 원'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하지만 그 기세는 롱런하지 못했다. 2005년 큰 기대속에 LG에 입단한 박병호는 프로 무대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힘이 실린 방망이는 헛돌기만 했다. 결국 2년 만에 군대를 갔고, 제대 후 다시 의욕을 불태웠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LG에서 4시즌(2005~6, 2009~2010)동안 기록한 홈런은 불과 24개 뿐이었다.
결국 LG는 박병호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런 박병호를 원한 것은 만년 하위권팀 넥센. 'B급 선수'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던 박병호가 넥센으로 간 것은 일면 처량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편견일 뿐이었다. 박병호의 개발되지 않은 잠재력은 여전히 거대했고, LG와 달리 느긋한 분위기의 넥센은 그런 박병호가 자랄 수 있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토대였다.
강남의 귤을 강북으로 옮겨심었더니 탱자가 되더라는 '남귤북지'의 고사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똑같은 나무를 어떤 토양에 심느냐에 따라 귤을 맺을 수도 있고, 탱자가 열리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선수의 육성에도 이 고사는 적용될 수 있다. 박병호는 그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김시진 감독의 요청과 이장석 대표의 결정으로 넥센에 새 둥지를 튼 박병호는 박흥식 타격코치의 조언으로 보다 적극적인 홈런 스윙을 장착했다. 이어 팀의 배려로 풀타임 4번자리를 꿰찼다. 그런 신뢰와 기다림 속에 박병호는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던 것이다.
야구를 떠나려던 박병호, 가족을 생각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박병호에게는 '희망'이 비추지 않았다. 박병호는 "2군을 전전할 때 너무 실망감과 좌절감이 컸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내가 이렇게 야구를 못하나?'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럴만도 했다. 3억3000만원이라는 거액의 입단계약금을 받고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좀처럼 야구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덩치만 컸던 19살 야구 유망주에게 팀은 딱 '3억3000만원'만큼의 기대를 보였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았고, 상대팀의 견제도 또 그만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런 커다란 주목을 홀로 이겨내기에는 박병호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 입단 첫 해 79경기에 나왔으나 타율은 불과 1할9푼에 그쳤고, 장기인 홈런도 3개 밖에 치지 못했다. 2년차에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출전경기수는 48경기로 줄었고, 타율도 1할6푼2리로 퇴보했다. 홈런이 2개 늘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점점 2군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시간은 고스란히 '좌절의 기억'으로 박병호에게 남았다. 박병호는 "특히나 군 제대 후 다시 의욕을 갖고 도전했던 2009~2010년에마저 야구가 안될때는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좌절의 시간을 함께 해준 것은 가족이었다. 부모님은 늘 박병호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결혼한 아내 이지윤 씨도 박병호가 다시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는 데 큰 버팀목이 되어줬다. 박병호는 "부모님과 아내 등 가족이 아니었다면 야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늘의 MVP도 없었다"며 가족에게 MVP의 공을 돌렸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