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죽을각오로 쓴다]10구단은 김성근 김인식을 주목하라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10-15 18:13


퓨처스리그 번외경기 고양원더스의 홈 개막전인 SK전이 27일 고양 국가대표 훈련장에서 펼쳐졌다. 김성근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서고 있다. 고양=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4.27/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두산-롯데전을 지켜본 야구전문가들은 물론 팬들까지 "경기 내용이 실망스럽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포스트시즌은 최고의 팀들이 펼치는 최고의 무대인데, 이에 걸맞지 않게 내용으로는 졸전이 이어졌다. 몇몇 야구인들은 프로선수라고 보기 어려운 어이없는 수비, 수준 낮은 주루 플레이를 두고 "사회인 야구를 보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코칭스태프의 경기 운영도 미숙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납득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이 이뤄지고, 투수 교체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자멸하기도 했다. 포스트시즌이 이렇다면 정규시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경기력 저하는 그만큼 감독이 자기 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제대로 팀을 만들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폭발적인 흥행력에 비해 야구경기의 질 자체는 오히려 퇴보했다는 이야기가 왜 꾸준히 나오는 걸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한국프로야구가 경험이 적은 젊은 감독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40대 젊은 지도자에게 팀을 맡기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이번 포스트시즌에 오른 팀의 사령탑을 살펴보자. 삼성 류중일 감독이 49세, SK 이만수 감독이 54세, 두산 김진욱 감독과 롯데 양승호 감독이 52세다. 9개 구단 사령탑 중에서 40대가 류중일 감독을 비롯해 선동열 KIA 감독(49),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44), 김기태 LG 감독(43) 등 4명이다. 50대 감독이 NC 김경문 감독(54) 등 4명이고, 한화가 김응용 전 삼성 사장을 감독에 선임하면서 70대 사령탑이 탄생했다. 김응용 감독을 뺀 8명의 평균 연령이 49.6세다.

젊은 사령탑이 대세가 되면서 베테랑 감독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시간을 두고 경험을 더 쌓아야 할 젊은 코치급 인사들이 급히 지휘봉을 잡았다. 젊은 지도자의 새로운 감각, 구태에서 벗어난 스타일, 역동적인 야구를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나온 결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 같다. 프로야구 감독의 능력을 나이만으로 재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젊은 감독 위주의 분위기는 다양성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사실 젊은 감독들이 득세한 것은 '역동
제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미디어데이가 20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 홍보대사에 위촉된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과 김인식 전 감독이 영상물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오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잠실과 목동구장에서 펼쳐진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2.08.20/
적인 세대교체'라는 대의명분 뒤에 숨은 구단들의 편의주의 탓이 크다. 구단들이 상대하기 편한 지도자를 선호하는 현상이다. 지난해 김성근 감독이 SK 프런트와 충돌하고 경질된 사건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40대 중후반에 감독이 됐다가 2~3년 만에 경질돼 그 길로 감독직에 복귀하지 못하는 사례가 최근 몇 년간 부지기수다. '80년대에는 김응용 감독도 40대 초반이었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때는 경험많은 지도자 자체가 크게 부족했던 초창기였다.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김응용 한화 신임 감독(71)의 말처럼 프로야구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따라가다보니 지나치게 젊은 사람 위주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지도자의 신선함과 베테랑 감독의 노련미가 공존해야 프로야구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젊은 지도자를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짜임새와 균형, 그리고 스토리를 갖자는 뜻이다.

이쯤에서 한국 프로야구는 김성근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감독(70)과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65)의 활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김성근 감독은 OB와 삼성, 쌍방울, 태평양 LG, SK 등을 20년 간 지휘했고,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김응용 감독이 '우승 청부사'라면 김성근 감독은 '야구 장인'이다.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이 김성근 감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김인식 위원장도 16년 동안 쌍방울과 두산, 한화를 이끌며 2차례 정상에 올랐다. 두 차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을 맡아 4강과 준우승을 일궈내면서 한국야구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다. 김성근 감독이 통산 2327경기, 김인식 위원장이 2057경기를 지휘했다.

포스트시즌이 끝나는대로 프로야구 10구단 창단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KT가 수원시를 연고로 하는 팀 창단을 추진하고 있다. 10구단이 팀을 만드는 능력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김성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 어떨까. 강력한 리더십으로 일반 지도자가 엄두를 낼 수 없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얼마전 고양 원더스와 2년 재계약을 하면서 프로팀에 갈 생각이 없다고 공표를 했지만, 한국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간곡하게 요청을 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퓨처스리그에서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경기를 응시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모습.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m.com

김성근 감독과 김인식 위원장같은 관록의 명장들이 복귀하면 프로야구에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진다. 김응용 대 선동열 감독의 사제대결 뿐만 아니라, 김응용 대 김성근 감독, 김응용 대 김인식 감독의 '스토리'가 있는 매치가 탄생한다. 스토리가 풍성해지면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흥행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심심찮게 나이가 지긋한 노 감독을 볼 수 있다. 주니치 드래곤즈를 센트럴리그 2위로 이끈 다카기 모리미치 감독(71), 호시노 센이치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65)은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 오른 10개 팀 감독의 평균 나이는 56.2세다. 만년 꼴찌팀 워싱턴 내셔널스를 올시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으로 이끈 데이비 존슨 감독(69)은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짐 릴랜드 감독은 68세, 신시내티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63세, 텍사스의 론 워싱턴 감독은 60세다.

73세였던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올해 마이애미 말린스로 팀명 변경)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잭 맥키언 감독(82)은 지휘봉을 놓았다가 81세였던 지난 시즌 다시 팀을 이끌었다. 1944년 생인 토니 라루사 감독(68)은 지난해까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이끌었다.

김응용 감독은 한화 사령탑에 선임되자 "하고 싶은 야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김성근과 김인식 감독도 빨리 돌아와 함께 붙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베테랑 감독이 분명히 필요하다. 김성근 감독, 김인식 위원장을 프로야구 무대에서 다시 보고 싶다.

베테랑 감독이 존중받고 나이 들어서까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모습이 프로야구에서 선행되면 '단순노동 아르바이트도 파릇한 젊은이가 아니면 안된다'는 한국사회의 그릇된 의식 개선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프로야구 9개 구단 감독 현황

구단=감독=나이=감독경력

한화=김응용=71=22년

SK=이만수=54=1년

NC=김경문=54=9년

롯데=양승호=52=2년

두산=김진욱=52=1년

KIA=선동열=49=7년

삼성=류중일=49=2년

넥센=염경엽=44=-

LG=김기태=4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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