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8개 구단 중 가장 열성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는 2000년대 초반 최약체 팀이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4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야구 도시 부산팬들은 '가을야구를 보고 싶다'며 절규했다. 당시 롯데 팬들에게 가을은 야구를 보고 싶지 않은 계절이었고, 포스트시즌 진출 팀을 부러워하며 보내던 계절이었다. 찬바람이 불면 롯데 야구는 사그라들었다. 롯데는 가을이 되면 거인이 아닌 방관자였다.
흔히 포스트시즌에서 이기려면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홈런이 터져줘야 한다. 집중타가 나오기 어려운 가을잔치에선 한순간 균형을 깨는 홈런 한 방이 승리의 보증수표가 된다. 둘째,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의 대활약은 선수단 전체를 고무시킨다. 마지막 세번째, 분위기를 정점으로 이끌기 위해 역전승이 필요하다.
이 3가지 중에서 2가지만 있어도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할 확률은 부쩍 높아진다. 하물며, 이 가을 롯데는 3가지를 모두 갖췄다. 그동안 실패의 역사를 보상받는 듯 하다.
2001년 입단한 프로 12년차 박준서는 조성환의 백업 2루수다. 연차는 높지만 팀에서 비중이 높은 선수라고 볼 수 없다. 롯데팬이 아니라면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올해 조성환이 몸이 안 좋을 때 대체선수로, 혹은 대타로 87경기에 출전한 박준서는 정규시즌 홈런이 2개에 불과했다. 1차전에서도 대타로 나서 홈런포를 가동했다. 2차전에도 7회 대타로 나섰다가 조성환 대신 2루 수비에 들어갔다. 조성환의 그림자였던 박준서에게 이번 준PO는 존재를 알리는 뜻깊은 무대가 됐다.
용덕한 또한 주전 포수 강민호의 뒤를 받치는 선수다. 용덕한은 지난 6월 두산에서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양의지에 밀려 두산에는 설 자리가 없었다. 준PO를 앞두고 "두산에 내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용덕한이다. 1차전 연장 10회 선두타자로 나서 우월 2루타로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더니 9일 2차전에서 다시 홈런으로 팀을 구했다. 백업의 설움을 훌훌 날려버리며 포스트시즌 미친 선수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전의 묘미를 빼놓을 수 없다. 1,2차전 승리 모두 영화처럼 극적이었다. 1차전에서 3-0으로 앞서갔던 롯데는 7회까지 3-5로 뒤졌다. 정규시즌 막판 롯데 분위기라면 경기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무서운 뚝심을 발휘해 8회 5-5 동점을 만들더니, 연장 10회 3점을 뽑아 기어이 재역전승으로 장식했다. 더구나 이날 롯데는 실책 4개를 기록하는 등 자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2차전에서도 롯데는 먼저 1점을 내주고 내내 끌려가다가 7회 동점, 9회 역전에 성공했다. 롯데의 승리 이상으로 두산에는 충격적인 패배였다.
2012년 롯데가 가을 드라마를 쓰고 있다. 가을 드라마가 대박을 치기 위한 3대 요소가 준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꿰맞춘듯 다 나왔다. 만일 이 3가지가 계속 롯데 편이라면 롯데의 가을 행보는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잠실=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