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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잔인한 편애. 문규현 조성환의 극과극 행보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2-10-09 21:13


포스트시즌의 신은 아주 짓궂다. 한 사람에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돈을 몰아준다. 그런데 그 돈이 딴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또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나온 돈이다.

단기전의 유명한 말. '미친 선수가 나와야 이긴다'고 했다. 그러나 '미친 선수' 만큼이나 '미치게 만드는 선수'도 반드시 나오는 게 가을잔치의 드라마틱한 속성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에 달하는 현장. 바로 포스트시즌이다. 심리적 요인이 크다. 너무 부담감이 큰 판이니 만큼 한번 꼬이면 점점 굳게 된다. 대신 한번 풀린 선수는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황홀경 속에서 평소의 기량 이상을 발휘하게 된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9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나왔다.


2012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두산과 롯데의 경기가 9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7회초 1사 1,2루 롯데 문규현이 좌중간에 떨어지는 1타점 동점타를 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문규현이 미쳤다.

문규현의 페넌트레이스 타율은 2할5리. 롯데의 유격수지만, 타순은 9번이다. 한마디로 주전 가운데 가장 타격이 약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장점이 있다. 방망이를 짧게 잡고 휘두르는 스윙은 날카롭다. 장타력을 기대하긴 힘들어도, 좋은 컨택트 능력을 보일 가능성은 많다. 게다가 선구안이 좋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이런 장점들이 극대화되고 있다. 1차전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고른 뒤 4회 천금같은 적시타를 터뜨렸다. 두산 니퍼트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초구 노려치기에 성공했다. 이 순간을 거치면서 그의 타격 사이클은 급격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2차전, 그의 위력은 절정이었다. 3회 우전안타, 5회 좌전안타를 터뜨렸다. 배트를 짧게 쥔 상태에서 간결하게 휘두르는 스윙은 완벽했다. 0-1로 뒤지고 있던 7회. 1사 1, 2루 상황에서 다시 중전안타를 터뜨렸다. 한마디로 자신과의 심리싸움에 이기면서 나타난 '시너지 효과'다. 2차전까지 완벽히 '미친' 선수는 문규현이었다. 수비에서도 집요하게 자신을 향하는 타구를 한번의 실수 없이 매끄럽게 처리했다. 공수에서 더이상 바랄 게 없었다.


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2 준플레이오프 2차전 롯데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7회초 1사 만루서 롯데 조성환이 병살 타구를 친 후 아쉬워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더욱 꼬이는 조성환


조성환은 2차전을 앞두고 "바보가 된 기분"이라며 침울해 있었다. 전날 준플레이오프 1차전 악몽 때문이었다. 5회 두 차례의 실책. 결국 3-0으로 앞서던 롯데는 3-4로 역전당했다. 결국 조성환은 교체됐다.

사실 조성환은 타격 컨디션이 나쁜 편이 아니다. 안타로 연결시키진 못했지만 날카로운 타구를 많이 날렸다. 하지만 그런 게 잡히면서 심리적인 불안함이 점점 더하다.

2차전 롯데 양승호 감독은 조성환을 2번 2루수로 선발 출전시켰다. 양 감독은 "조성환을 믿는다. 타격은 괜찮다"고 했다. 1회 볼넷을 얻어나가는 노련함도 보였다. 5회 2루수 직선타가 되긴 했지만, 날카로운 타격이었다. 문제는 7회였다. 문규현의 적시타로 1-1 동점이 된 상황. 두산 유격수 김재호의 실책으로 1사 만루, 황금같은 기회가 왔다. 그리고 조성환이 타석에 들어섰다. 잘 나가던 타자라도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찬스가 하필 제일 주눅들어 있던 조성환에게 왔다.

볼카운트 1B 1S에서 홍상삼의 결정적인 실투. 포크볼이 떨어지지 않고 가운데 높은 곳으로 들어왔다. 조성환은 힘껏 휘둘렀지만, 파울이 백스톱을 맞았다. 흔히 파울이 백스톱에 맞았다는 것은 타이밍이 제대로 맞았다는 의미. 조성환은 너무나 아쉬워했다. 제대로 맞힐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심리적인 부담감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4구째에 조성환을 기다린 것은 전날보다 더한 아픔이었다. 유격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 어찌보면 운이 너무 없었던 상황.

포스트시즌에서 '멘붕'은 한순간 찾아온다. 잠실=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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