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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LG를 섞어 놓은 듯한 오릭스, 이대호는 오릭스의 김태균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9-26 09:02 | 최종수정 2012-09-26 09:02


라쿠텐 전에서 시즌 20호 홈런을 터트린 이대호. 스포츠조선 DB

김성근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감독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윙이 부드러운' 이대호를 역대 최고의 타자로 꼽았다. 사실 최근 몇 년 간 국내 프로야구에서 이대호와 비슷한 수준에서 비교가 될만한 타자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11시즌 동안 타율 3할9리, 225홈런, 809타점. 정교함과 파워 등 타자로서 갖춰야한 재질을 모둔 갖춘 이대호는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라고 할만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이대호가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 입단을 결정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국내 프로야구보다 좀 더 세밀하고 수준이 높은 일본 무대에서 성공에 대한 중압감, 상대의 집요한 견제를 뚫고 바로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이대호에 앞서 일본 프로야구에 도전했던 선수들 대다수가 첫 해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기에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이종범은 1998년(주니치) 부상 악재 속에서 2할8푼3리, 10홈런, 29타점에 그쳤고, 이승엽은 2004년(지바 롯데) 2할4푼, 14홈런, 50타점을 기록했다. 또 이병규는 2007년(주니치) 2할6푼2리, 9홈런, 46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했고, 김태균은 2010년(지바 롯데) 2할6푼8리, 21홈런, 92타점을 마크했다. 국내 시절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대호는 달랐다. 초반 잠시 주춤했던 걸 빼고는 시즌 내내 꾸준했다. 시즌 종료를 열흘 정도 앞두고 있는 25일 현재 2할8푼7리(495타수 142안타·8위), 22홈런(2위), 85타점(1위)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중반 한때 타격 3관왕을 노려볼만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오릭스를 넘어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타자로 인정을 받았다.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다웠다.


오카다 감독이 지난해 이대호의 입단식에서 이대호에게 모자를 씌워주는 모습. 오카다 감독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올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놓는다. 스포츠조선DB
하지만 이대호의 뛰어난 성적과는 달리 오릭스는 올해가 최악의 시즌으로 기록될 것 같다. 25일 소프트뱅크에 0대7 연봉패를 당한 오릭스는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을 포함해 구단 사상 최다인 12연패에 빠졌다.

이대호가 타선에서 고군분투했으나 투타 모두 무기력증에 빠진 오릭스는 시즌 내내 출구를 찾지 못했다. 이미 최하위가 확정된 오릭스는 2002년부터 올해까지 11년 간 6번이나 꼴찌에 머무르게 됐다.

최근 오릭스의 성적을 보면 꼴찌 단골팀인 한화와 1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LG를 섞어 놓은 듯 하다. 오릭스는 스즈키 이치로가 뛰었던 1996년 이후 리그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 13시즌 중 12년을 B클래스(리그 4~6위)에 머물르게 됐다. 2008년 리그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리그 3위까지 출전)에 나간 게 2000년대 들어 유일한 포스트 시즌 출전이다.

더구나 오릭스는 25일 소프트뱅프전을 앞두고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과 다카시로 노부히로 수석코치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에 최악의 부진을 보인 오카다 감독은 시즌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물러날 예정이었다. 구단 고위층과 시즌 종료와 함께 사퇴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오릭스 구단은 그닷없이 "꼴찌가 확정됐고 내년 시즌을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해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연패가 계속되고 무기력한 경기가 이어지자
8월 27일 한화 선수단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대전구장에 나온 한대화 감독이 언론 인터뷰를 하는 모습.
대전=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구단 고위층이 칼을 뽑아 든 것으로 보인다.

오카다 감독은 경기전 선발 라인업을 구상하다가 해임통보를 받고 급하게 선수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오카다 감독과 다카시로 수석코치 모두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구단 수뇌부로부터 시즌을 마무리해달라는 이야기를 3일 전에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경질된 한대화 한화 감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한대화 감독도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고, 사실상 시즌 종료후 사퇴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첫 해 맹활약을 펼친 이대호로선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다. 한화의 김태균처럼 타선에서 고군분투를 했는데도 팀이 최악의 부진에 빠졌으니 허탈할 것 같다. 개인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팀 성적이 따라줘야 더 빛나는 법이다. 이대호가 세이부 라이온즈나 요미우리 자이언츠같은 강팀에 있었더라면 더 주목을 받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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