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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왜 진작 봉중근을 마무리로 못 썼나?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09-23 11:47 | 최종수정 2012-09-23 11:47



선입견에 발목을 잡힌 꼴이다.

LG의 마무리는 봉중근이다. 올시즌 몇 안 되는 수확 중 하나다. 봉중근의 마무리 전업이 반가운 이유는 1년 반짝 임시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봉중근은 향후 수 년 간 LG의 든든한 뒷문지기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사실 봉중근이 LG에 온 뒤부터 항상 나왔던 게 '마무리 전향설'이다. LG로선 김용수 이상훈 이후 팀의 상징적인 마무리투수가 없었다. 지난 2002년 이후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이름값 하나는 최고인 타선이 있었지만, 언제나 결정적인 고비를 넘지 못했다. 확실한 마무리가 가져오는 승리가 있었다면, LG의 기초체력이 이만큼 떨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무리 전환설 나올 때마다 '불합격' 판정 받았던 봉중근

봉중근은 한국무대 첫 시즌이었던 지난 2007년부터 마무리와 선발을 두고 코칭스태프에게 고민을 안겼다. 김재박 전 감독은 이리저리 테스트를 해보다 결국 시범경기에서 우규민에게 마무리 보직을 맡겼다. 김 전 감독은 2009시즌 전 스프링캠프 때도 봉중근의 마무리 기용을 검토했다 포기했다. 지금의 봉중근을 보면 가장 속이 쓰릴 이가 아닐까.

사실 봉중근이 마무리로 검토되다 선발로 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두 가지다. '확실한 선발 1명을 포기할 수 없다'와 '마무리로서 검증이 안 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2일까지 35경기서 22세이브를 올린 봉중근에게 결과적으로 이 두 가설은 빗나간 셈이 됐다.

LG는 개막 전 마무리를 외국인선수 리즈에게 맡겼다. 160㎞에 이르는 강속구를 뿌리는 리즈는 확실히 마무리로서 매력적인 카드였다. 하지만 정작 리즈는 마무리라는 보직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두번째 선택은 재활중인 봉중근이었다. 당초 불펜 복귀를 목표로 1이닝씩 재활등판을 하고 있었지만, 이 등판이 자연스레 마무리 전업으로 이뤄졌다. 봉중근은 승승장구했다. 6월22일 잠실 롯데전에서 첫 블론세이브에 분을 못 이기고 소화전을 내리치기 전까진.


비록 팀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단초를 제공했으나 봉중근은 마무리 잔혹사를 끊은 히어로가 됐다. LG는 선발투수 1명을 잃었지만,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새 얼굴들을 기용했다. 군복무를 마친 류제국이 시즌 뒤 계약이 가능하고, 정찬헌도 소집해제되는 등 내년 시즌 가용자원은 더욱 늘어난다. 결국 LG는 '선발투수 봉중근'을 포기했다.


역투하고 있는 LG 마무리 봉중근. 봉중근의 투구 및 수비 스타일은 마무리에 최적화돼 있다. 스포츠조선DB
마무리 봉중근에 대한 검증론, 선입견에 불과했다

사실 봉중근의 스타일은 마무리에 최적화돼 있다. WBC에서 이치로에게 굴욕을 안길 정도로 주자 견제 능력은 그를 따라 올 만한 이가 없다. 타이트한 상황에서 등판하는 마무리투수에게 견제 능력은 신이 내린 축복과도 같다. 퀵모션 역시 빠르다.

게다가 봉중근은 수비력이 뛰어나다. 아홉번째 야수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덕에 번트 등 상대 작전에 대한 대처 능력도 좋다. 여러모로 타이트한 상황에 등판하는 마무리투수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

이런 훌륭함에도 봉중근에 대해선 '마무리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선입견이 크게 작용했다. 몸이 늦게 풀리는 특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방적인 경기라면 정상적으로 대기할 수 있지만, 경기 막판 갑작스레 상황이 요동칠 때 마무리투수는 갑자기 등판을 준비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런 특성상 워밍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큰 걸림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봉중근은 1회 투구수가 많았다. 긴 이닝을 던지는 선발투수 중에선 첫 회 고전하는 이들이 많다. 마운드에 올라서도 감을 잡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봉중근 역시 그런 슬로스타터 기질이 있었다. 짧은 이닝을 던져야 하는 마무리투수에겐 가장 큰 결격 사유였다.

하지만 봉중근은 이 모든 우려를 비웃듯 마무리 전업에 성공했다. 봉중근의 마무리 전업을 주도한 차명석 투수코치는 "그동안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확실한 선발투수를 마무리로 돌리는 건 투수코치의 목을 내놓는 일과도 같다. 실패했을 때 타격이 크다. 코칭스태프 입장에서 쉽게 시도하기 힘든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전임 투수코치들의 고민이 실행 직전 좌절된 이유다. 차 코치는 "나이도 들어가고 있고 지금 봉중근 몸으로는 길게 던질 수 없다. 선발로 하루 던진 뒤 며칠 쉬는 게 낫지 않냐는 말도 있지만, 마무리로 60이닝 이하로 끊어주는 게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봉중근은 지난 겨울부터 김용일 트레이닝코치의 지도 아래 철저하게 빠른 워밍업을 준비했다. 사실 워밍업 문제는 노력하면 되는 것이었다. 1회 고전하는 데 대해서 차 코치는 "변화에 적응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겨울부터 착실히 준비했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선수다.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봉중근 본인도 마무리를 원한다. 보직의 재미를 느꼈고,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선배 임창용의 '롱런하라'는 조언도 한 몫 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에게 마무리는 확실히 롱런할 수 있는 기회다. LG 역시 마무리 잔혹사를 끊고 홀가분하게 내년 시즌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봉중근은 지난 겨울부터 불펜투수로 복귀를 준비하면서 워밍업 등 마무리로서 우려되는 모습을 떨쳐냈다. 오키나와 전지훈련 당시 볼을 이용해 몸을 풀고 있는 봉중근. 사진제공=LG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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