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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 똑같았던 1사 만루의 상황. 하지만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6회초까지 지루한 투수전. 롯데 타선은 SK 선발 윤희상의 호투에 막혀 단 1점도 내지 못했다. 1-0 SK의 리드 상황.
1차 승부처는 6회말이었다. 롯데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윤희상의 투구 패턴을 파악한 인내심의 결과. 1사 이후 김주찬이 볼카운트 3B 1S에서 좌선상 2루타를 만들어냈다. 공격성향이 강한 김주찬이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이끌면서 만들어낸 좋은 타격.
결국 SK 이만수 감독은 윤희상 대신 필승계투조의 핵심 박희수를 투입했다.
타석에는 박종윤. 잠시 여기에서 필름을 경기 전으로 돌려보자. 롯데 양승호 감독은 박종윤에 대해 "낮은 공은 너무 잘 친다. 하지만 높은 공은 스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종윤에게 '내가 상대팀 감독이라면 높은 공으로만 승부할 것'이라고 환기시켜주기도 했다"고 했다. 물론 박종윤의 약점은 모든 팀에서 알고 있는 부분.
이 약점이 현실이 됐다. SK 포수 정상호는 초구부터 높은 공을 요구했다. 1구는 파울. 2구도 높은 공이었다. 결국 3루수 플라이. 단 1명의 주자도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했다.
다음 타자는 조성환. 박희수는 투심성 체인지업(박희수 특유의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의 혼합형 구종으로 오른손 타자 기준으로 가운데로 들어오다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구종)으로 철저하게 승부했다.
공 4개를 모두 투심성 체인지업으로 던졌다. 결국 1B2S의 불리한 볼카운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조성환은 4구째 배트를 휘둘렀다. 투수 앞 땅볼.
상대의 약점과 박희수의 강점을 적절히 혼합한 포수 정상호의 절묘한 볼배합이 빛났던 장면. 결국 SK는 승부처에서 집중력을 배가시키며 무실점으로 6회말 롯데의 공격을 막아냈다.
승부처를 견디지 못한 롯데
'위기 뒤 찬스'. 야구계에 흔히 등장하는 속설이다. 아직 롯데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단 1점 차이.
그런 의미에서 7회초 SK의 공격이 중요했다. 롯데가 버틸 수 있다면 승부는 몰랐다. 박재상의 내야안타로 만든 1사 2루에서 후속 타자는 공격력이 강하지 않은 최윤석. 그런데 롯데 선발 송승준은 최윤석에게 볼넷을 내줬다. 2S에서 내준 4구였다. 뒤이어 임 훈에게 우전안타를 내줘 1사 만루의 위기.
롯데는 투수를 김성배로 교체했다. 김성배는 잘 던졌다. SK 정근우의 타격은 배트 끝에 맞은 1루수 앞 땅볼. 그런데 여기에서 결정적인 실책이 나왔다. 1루수 박종윤이 타구를 빠트렸다.
배트 끝에 맞아 회전이 많이 걸린 까다로운 타구이긴 했다. 하지만 박종윤은 가장 견고한 1루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다. 문제는 올해 첫 풀타임 시즌인 그에게 절체절명의 승부처의 압박감을 견딜 수 있는 경험이 부족했다. 결국 스코어는 3-0으로 벌어졌다.
결국 승부는 여기에서 끝났다. 롯데(62승6무53패)는 페넌트레이스 2위 싸움의 분수령이었던 '사직 2연전'을 모두 SK(63승3무53패)에 내주며 3위로 내려앉았다.
롯데는 올해 투수력과 수비력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야구관계자들은 올해 초반 '롯데와 SK의 팀컬러가 뒤바뀌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5회 연속 진출을 이룬 SK에 비하면 여전히 승부사 DNA가 부족한 게 사실. 페넌트레이스 막판, SK는 승부처에서 완벽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한 부분이다. 어차피 두 팀은 포스트 시즌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 롯데로서는 숙제를 남긴 경기였다. 부산=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