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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달여 전 경기와 판박이였다. 장소도, 상대팀도 같았다. 그리고 롯데 승리를 거둔다면 롯데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롯데는 패했다. 롯데가 자랑하는 풍성한 불펜진. 그 투수들을 다른 경기와 같이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모습도 똑같았다.
15일 경기에서 양승호 감독은 평소 같지 않은 다른 불펜 운용을 선보였다. 조급하다고 해야할까. 조금만 위기가 찾아오거나 투-타에서 좌-우 이점이 살려지지 않을 경우 무조건 투수를 교체했다. 이날 선발 이용훈을 제외하고 등장한 투수는 7명. 특히 8회에는 김성배를 시작으로 진명호까지 1이닝에만 5명의 투수를 올렸다. 1점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8회 최대성과 정대현이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통한의 역전을 허용, 패하고 말았다. 그 후유증은 다음 경기에 곧바로 이어졌다. 16일 경기에서는 최대한 불펜을 아꼈지만 이승호가 연장 10회 결승점을 허용하며 5대으로 패했다. 당시 여기저기서 "투수 운용에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로부터 1달여가 지난 9월18일. 롯데는 1.5경기차로 간신히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SK를 다시 만났다. 경기가 1-1로 팽팽히 흘러가자 또다시 불펜 투수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6회 선발 고원준에 이어 강영식, 정대현이 나왔고 7회에는 이명우, 김성배, 최대성이 모두 나왔다. 강영식과 이명우는 단 1타자씩 만을 상대하고 내려갔다. 하지만 박재상에게 결승 적시타를 허용하며 1대3으로 패했다.
이러다 SK 트라우마 생길라.
최근 몇년간 롯데는 유독 SK를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2010년 상대전적 7승12패, 지난해 8승10패1무였다.
올해는 상황이 역전됐다. 18일 경기 결과 포함 롯데가 9승7패로 앞서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은 아무 소용없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양팀이다. 앞으로 남은 3경기에서의 승패,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의 성적이 중요하다.
15일 경기는 마치 포스트시즌을 방불케 했다. 양팀이 총력전을 펼쳤다. 만약 롯데가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에서 SK를 만난다면 15일 경기와 같은 양상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위기 때마다 주요 투수들을 총출동시킬 것이다. 그래서 이 2번의 아픔이 롯데에는 뼈아프다. 최강이라는 롯데 불펜을 상대로 SK 타자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롯데 투수들은 SK 타자들을 상대로 어려운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된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대현과 최대성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SK에서 건너온 정대현은 유독 친정팀을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8월 2경기 연속 실점 때는 복귀하지 얼마 되지 않은 정대현의 몸상태가 참작됐다. 하지만 15일 경기에서 다른 팀 선수들을 상대하는 정대현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담감이 살짝 엿보였다.
광속구 투수 최대성도 문제다. 박재상의 결승타 장면을 보자. 공은 나쁘지 않았다. 무려 155km의 강속구가 바깥쪽 꽉 차게 들어왔다. 하지만 박재상이 잘 밀어쳤다. 박재상 뿐 아니다. SK 타자들은 중심타선, 하위타선 가릴 것 없이 파워와 컨택트 능력을 겸비했다. 최대성의 빠른 공이 장타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타순에 좌-우 타자가 번갈아가며 등장해 위기 때 계속 투수를 바꿔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가장 중요한건 지난해 플레이오프 악몽을 잊는 일이다. 올시즌 상대전적은 좋았지만 롯데 선수들은 유독 SK와의 경기 때 몸이 무겁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SK전에 그만큼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긴장하는 쪽이 손해보는건 당연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