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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고춧가루'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9-11 07:45 | 최종수정 2012-09-11 08:02


10일 잠실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KIA와 LG의 경기가 열렸다. LG가 7-1의 승리를 거두며 3연전을 싹쓸이 한 가운데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화, 넥센과 더불어 꼴찌 후보로 꼽혔던 LG.그런데 삼성과의 개막 2연전에서 2연승을 거두는 등 지난 4~5월 예상과는 달리 맹위를 떨쳤다. 오랫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LG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젊은 감독 김기태 감독의 '형님 리더십'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갔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기에, LG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선전이었다. LG는 개막 이후 두 달 가까이 4위 안팎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들의 봄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초반부터 나돌던 '6월 위기설'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6월 24일 6위로 떨어진 LG는 6월 29일 7위로 추락해 두 달 넘게 평행선을 달렸다. 한화와 함께 목표를 상실한, 어떻게 해도 안 되는 한심한 팀으로 전락했다. 지난해에 비해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병규 이진영 정성훈 박용택 등 스타 선수들이 포진한 타선은 응집력이 부족했다. 고정된 선발 로테이션을 운영하지 못할 정도로 마운드가 무너지기도 했다.

허약한 불펜은 허약한 LG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주소였다. 어이없는 수비실책, 주루 플레이가 속출해 LG 야구의 위상을 떨어트렸다. 지난해에 이어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다는 비아냥, "그러면 그렇지"라는 조소가 뒤를 이었다. 매년 시즌 막판이 되면 흘러나오곤 했던 선수단 내 불협화음이 김기태 감독이 취임하면서 사라졌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선도했던 LG의 서글픈 자화상이었다.


10일 잠실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KIA와 LG의 경기가 열렸다. 8회말 2사 2,3루 LG 최영진의 좌익수 뒤 2루타 때 2루주자 이병규가 홈까지 달렸지만 태그아웃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10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이 일찌감치 물건너갔으니 선수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내년 시즌을 바라보고 리빌딩을 준비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LG를 다시 봐야할 것 같다. LG는 8일, 9일 이틀 연속 KIA를 맞아 연장 접전 끝에 승리를 따낸 데 이어, 10일에도 KIA를 무너트렸다. 시즌 막판 4위 탈환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KIA에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최근 9경기에서 6승1무2패. 그런데 상대가 모두 LG보다 순위가 높은 상위권팀이었다. 2위 경쟁이 한창이 라이벌 두산에 1승을 거뒀고, 롯데전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하더니, 1위 삼성을 맞아 1승1패로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상대팀들은 LG를 승수쌓기 제물로 생각했다 뒷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보통 시즌 종료를 앞두고 하위권 팀이 순위 경쟁 중인 상위권 팀을 잡을 때마다 '고춧가루를 뿌린다'고 표현한다. 6월 중순부터 두달 넘게 동네북 신세였던 LG가 중요한 순간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전날 연장 혈투를 벌인 LG와 KIA가 9일 잠실 야구장에서 다시 만났다. LG 이대형이 3대3으로 맞선 연장 10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고 환호하며 달려 나가고 있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앞으로가 더 재미있을 것 같다. LG가 올시즌 상대전적에서 앞선 구단이 3개 팀인데, 순위 싸움을 펼치고 있는 SK와 두산이 들어 있다. LG는 SK에 9승1무5패, 두산에 9승5패로 앞서 있다. SK와 남은 4경기, 두산과 남은 5경기가 흥미진진할 것 같다.


LG 구단 관계자가 꼽은 시즌 막판 선전의 원동력은 최고참 최동수(41)와 주장 이병규(38)다. 개인 성적과 상관없이 "끝까지 자존심을 지켜보자"며 팀 분위기를 앞장서서 추스리고 있다고 한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10일 현재 50승4무61패, 남은 경기는 18게임. 개막을 앞두고 올시즌 60패를 목표로 하겠다고 했던 김 감독의 다짐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김 감독은 아직까지 4강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자기최면이다. 그게 10년 간 부진에도 불구하고 LG를 응원해온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포스트 시즌 진출은 몰라도, 지금같은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6위, 나아가 5위까지 노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LG가 시즌 종료 때까지 고춧가루 역할을 해준다면, 올시즌 프로야구가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 같다. 끝은 또다른 출발점이기도 하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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