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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만루만큼 긴장감 넘치는 상황도 없다. 공격하는 쪽에서는 대량 득점을 이끌어내야 하는 반면, 수비팀은 실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홍상삼의 경우처럼 만루의 위기를 넘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삼진을 잡아내는 것이다. 아웃카운트에 따라서는 내야 땅볼을 유도해 더블플레이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비하는 팀에서는 실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비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삼진 또는 땅볼을 잘 유도하는 투수를 투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만루 위기를 맞은 투수의 심정은 어떨까. 홍상삼은 이날 경기후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내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을 던졌는데 다행히 삼진이 나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홍상삼은 올시즌 150㎞를 웃도는 빠른 공과 낙차 큰 포크볼을 주무기로 셋업맨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를 두산의 필승조로 자리잡게 한 것이 바로 포크볼이다. 무사 만루에서 홍상삼은 박석민 최형우 진갑용을 상대로 결정구로 포크볼을 던져 삼진 2개, 플라이 1개로 위기를 넘겼다.
만루를 살려라
올시즌 타점 기준으로 만루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팀장타율(0.351)이 가장 낮은 KIA다. KIA는 올시즌 만루 상황에서 타율 3할5푼6리에 3홈런, 110타점을 기록했다. KIA는 시즌 내내 허약한 타선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만루 상황에서는 득점력을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다. KIA에 이어 LG가 만루 찬스를 가장 잘 살린 팀으로 나타났다. LG는 만루에서 타율 2할7푼4리를 기록했고 3홈런과 99타점을 뽑아냈다. 반면 만루의 위기를 가장 잘 넘긴 팀은 한화다. 한화는 만루에서의 피안타율이 2할3푼8리로 8개팀중 가장 낮았다. 이어 LG가 2할4푼7리로 만루 위기에서 효과적인 수비를 펼쳤고, 삼성이 2할7푼6리로 뒤를 이었다. 결국 만루에서의 공수 기록은 팀순위와 큰 관계가 없다는 의미다. 그만큼 만루는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다.
만루라도 무서운 타자는 피하라
만루에서 재미있는 상황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고의4구다. 국내야구에서는 아직 없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만루에서 고의4구가 6차례 나왔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2008년 8월18일 텍사스의 조시 해밀턴이 탬파베이와의 경기에서 9회말 2사 만루서 기록한 것이다. 당시 7-3의 넉넉한 리드를 잡고 있던 탬파베이의 조 매든 감독은 무시무시한 타격을 자랑하던 해밀턴의 장타를 의식한 나머지 그랜트 밸포어에게 고의4구로 거르게 한 뒤 투수를 댄 휠러로 바꿔 말론 버드를 삼진을 잡고 3점차 승리를 거뒀다.
지난 98년 5월28일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도 애리조나전에서 9회말 2사 만루서 고의4구를 기록한 적이 있다. 상대팀 애리조나의 벅 쇼월터 감독은 8-6의 리드 상황에서 마무리 그렉 올슨에게 고의4구를 지시해 본즈를 거른 뒤 다음 타자를 범타로 잡아내며 1점차 승리를 거뒀다. 줄 것은 주고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만루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