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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와 몸무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보다 멀리 치고, 빠르게 던지기 위해
선수들이 몸을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타자의 경우 힘과 비거리를 더하기 위해, 즉 장타력에 비중을 두겠다는 것이다. 투수는 단연 구속과 구위다. 공에 스피드와 힘을 더하기 위해 근육량을 늘려 몸을 불린다.
LG 박용택은 지난해 거포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팀에 마땅한 4번타자가 없었기에 본인과 팀을 위해 과감히 변화를 택했다. 비시즌 기간 체중을 불리고 근육량을 늘려 힘을 늘리는데 치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15홈런을 쳤지만, 타격왕을 차지했던 2009년(18홈런)보다도 적은 개수였다. 가장 큰 문제는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양쪽 햄스트링에 무리가 오는 등 몸을 불린 부작용이 컸다.
100㎏ 가까이 체중을 늘렸던 박용택은 "이래저래 해보니 내 적정 몸무게는 88㎏인 것 같다"며 지난해 말 엄청난 양의 개인운동을 해야만 했다. 날렵해진 박용택은 올시즌 26도루로 이 부문 공동 3위에 올라있다. 2005년 도루왕(43개) 출신답게 잘 치고, 잘 달리는 '호타준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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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쪽에서는 올해 재기에 성공한 삼성 배영수의 사례가 눈에 띈다.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는 데뷔 2년차였던 2001년부터 삼성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7년 1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뒤 150㎞에 이르는 강속구를 잃어버렸다. 있는 힘껏 공을 던져도 140㎞가 안 나왔다. 2009년 1승12패를 기록할 땐 전력으로 공을 던졌는데 128㎞가 찍히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배영수는 잃어버린 스피드를 되찾는데 온 힘을 쏟았다. 비시즌 내내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렸다. 근육량이 늘어야 구속도 늘어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좀처럼 스피드는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지나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유연성이 사라졌고, 팔 각도와 투구 밸런스가 무너진 걸 느꼈다.
결국 지난해 말에는 패턴을 바꿔 몸을 보다 가볍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근육을 없애고, 필요한 부분은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다. 덕분에 올시즌에는 140㎞대 중반까지 구속이 올라왔다. 덕분에 강속구를 잃고 기교파로 변신을 꾀한 지난 4년간의 시간 동안 갈고 닦은 수많은 변화구들이 빛을 발하게 됐다. 직구 덕분에 변화구의 효과 또한 커진 것이다. 결국 배영수는 2005년 이후 7년만에 두자릿수 승수를 올리면서 통산 100승의 감격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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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배영수와 정반대 케이스도 있다. 삼성의 개막전 선발이었던 차우찬이다. 차우찬은 비시즌 기간 가볍게 던지려는 생각으로 체중 감량을 시도했다. 인스턴트 음식을 완전히 끊고, 밥 대신 육류만 섭취하며 탄수화물을 줄였다. 86㎏ 가량 나가던 체중은 79㎏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적정 체중 밑으로 내려가면서 공에 힘이 떨어지는 역효과만 생겼다.
가벼워진 몸에서 공에 위력을 더하기 위해 투구폼에 손도 댔다. 디딤발을 홈플레이트에서 보다 1루쪽으로 내딛는 '크로스 스탠스' 형태로 바꾼 것이다. 캠프 땐 서서히 구속이 올라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가보니 바뀐 투구폼은 힘을 쓰는덴 부적절했다. 선발 자리를 잃고 시즌 내내 1,2군을 오간 차우찬은 "너무 잘하려다 이렇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 김현욱 트레이닝코치는 이에 대해 "야구선수는 체중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각자 자신의 '적정 체중'이 있다"고 밝혔다. 체중 변화에서 실패를 겪어 돌아가는 케이스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 코치는 "잘 하던 선수가 갑자기 부진에 빠지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 체중부터 체크해봐야 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는 체중 변화의 영향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코치는 최형우의 예를 들었다. 지난해 홈런왕과 타점왕을 석권한 최형우의 시즌 초반 부진은 체중조절 실패에서 왔다는 것이다. 105㎏ 정도 체중을 유지하던 최형우는 시즌에 들어간 뒤 성적에 따른 스트레스로 102㎏까지 빠졌다가 금세 108㎏으로 불어났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체중이 극과 극을 오갔고, 이는 부진의 장기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김 코치는 "좋은 선수들은 체중 변화가 거의 없다"며 체중 유지의 중요성을 밝혔다. 쌍방울에서 뛰던 97년, 불펜투수로 157⅔이닝을 던지며 20승을 올린 적이 있는 그의 몸무게 역시 81㎏에서 변화가 없었다. 아무리 투수 분업화가 지금 만큼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라 하지만, 중간계투로 규정이닝을 넘고 20승에 평균차잭점 1.88을 기록한 건 철저한 몸관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코치는 "체중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철저하게 몸을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라며 "젊은 선수들은 변화에 민감해져야 한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을 때 변화를 시도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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