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집중분석] 류현진 미국행, '장밋빛' 아니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09-03 11:38


31일 오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가 열렸다. 8회말 한화 류현진이 KIA 이준호 타석 때 주심의 볼 판정에 아쉬워하고 있다.
광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8.31.

'장밋빛 포장도로보다는 험난한 자갈밭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에 대한 현 시점에서의 전망은 이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최근 류현진에 쏠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 8월 31일 광주구장에는 수많은 메이저리그팀 스카우트들이 나타났다. 이날 KIA전에 선발 등판하는 류현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몇몇 스카우트들은 "메이저리그 3~4 선발급"이라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예상연봉에 대한 코멘트도 들렸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이러한 평가로 '장밋빛 미래'를 꿈꿔선 안된다. 결정권이 없는 스카우트들이 내부보고서가 아닌 외부에 하는 말은 '인포메이션'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립서비스'에 가깝다. 게다가 '포스팅시스템'은 철저하게 '구단'과 '구단'간의 비즈니스다. 들뜨지 않은 차분한 시각으로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31일 오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가 열렸다. 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한화 선발 류현진의 시합을 지켜보고 있다.
광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8.31.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비판하지 않는다

국내구단이나 메이저리그 구단이나 '스카우트'의 임무는 딱 한가지다. 목표로 삼은 선수의 가능성을 체크하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에서 투구폼과 대표구종을 분석하고, 타자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 소속팀 혹은 소속리그의 환경에서 어떤 투구를 할 지를 상상한다. 그리고는 세밀하게 구분돼있는 스카우팅 리포트에 점수를 매긴다.

스카우팅 리포트는 투수의 경우 크게 Velocity(구속)-Control(제구력)-Movement(볼끝)-Poise(경기운영능력)-Pitch Ability(종합 투구능력) 등의 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대해 스카우트들은 '5점 만점에 3.5점'하는 식으로 디테일하게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전체적인 경기 감상평과 향후 전망 등을 기재해 내부보고서를 완성하는 식이다.

이 내부보고서에 기재된 평가점수와 코멘트는 철저히 기밀자료에 해당한다. 외부로 유출될 경우 영입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고, 향후 연봉협상 과정에서 선수쪽에 주도권을 내줄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가 아닌 곳에 나오는 스카우트의 평가는 언제나 두루뭉술한 호평일색일 수 밖에 없다. "당장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거나 "3~4선발은 할 수 있다"와 같은 말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카우트들은 언제나 최상의 가능성에 대한 코멘트만 내놓을 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류현진이나 KIA 윤석민에 대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호평을 당장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을 예고하는 '청신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 말보다는 수많은 팀의 스카우트가 지방경기임에도 찾아왔다는 현상 자체가 더 의미를 지닌다. 두 선수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류현진은 다르빗슈 유와 같을 수 없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다시 냉정한 시각에서 류현진이 실제 포스팅시스템으로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경우를 예상해보자.

류현진이 올해 말 포스팅시스템에 참여하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바로 작년에 포스팅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하나의 기준선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르빗슈는 2011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시스템으로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결국 텍사스가 5170만 달러를 전 소속팀 니혼햄에 지급하고 우선협상권을 따냈다. 그리고 다르빗슈는 6년간 60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었다.

류현진이 분명 다르빗슈에 버금가는 '특급투수'이긴 해도, 이 정도의 초대형 계약을 따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장 큰 이유는 연봉의 수준 차이다. 다르빗슈는 2011시즌 니혼햄에서 연봉으로 5억엔(한화 약 72억4000만원)을 받았다. 미화로 약 640만 달러인데, 이 정도 연봉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매우 상위 클래스에 해당한다. 텍사스가 총 1억1170만 달러나 쓰면서 다르빗슈를 데려올 수 밖에 없던 이유도 기본적인 다르빗슈의 연봉 레벨이 높았던 데에서 기인한다.

반면 류현진의 올해 연봉은 4억3000만원이다. 미화(약 38만 달러)로 치면 2011년 다르빗슈 연봉의 약 17분의 1밖에 안되는 수준이다. 현실적으로 다르빗슈와 류현진을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의 시각차가 딱 이 정도라고 보면 된다. 연봉협상의 기본은 '바로 이전에 받았던 레벨에서의 출발'이다. 때문에 메이저리그 입장에서는 류현진은 '다르빗슈에 비해 저렴한 선수'일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메이저리그팀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못한 데다 기본 몸값이 저렴한 류현진에게 포스팅응찰액과 연봉으로 10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하기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다. 소프트뱅크의 에이스로 지난 해말 FA 자격을 얻어 볼티모어에 입단한 와다 쓰요시가 2년간 815만 달러를 받았다. 연간 4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포스팅비용을 제외한 순수 연봉에서 같은 좌완선발인 류현진이 이 정도 액수를 받기는 쉽지 않다.

한화는 과연 류현진을 보낼 수 있을까

포스팅시스템은 쉽게 말해 국내 구단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에 공개적으로 소속팀 선수를 소개하고 입찰을 받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팀들은 각자 정한 만큼의 포스팅 응찰액을 써내고, 이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낸 팀이 선수와 우선협상권을 갖는다. 포스팅 비용은 원소속구단의 몫이다.

그러나 이런 포스팅시스템에서 한국 선수들은 항상 고전했다. 98년 이상훈(당시 LG)이 60만 달러, 2002년 진필중(당시 두산)이 연초 첫 도전에서 '응찰팀 없음', 연말 두 번째 도전에서 '2만5000달러' 그리고 2002년 임창용(당시 삼성)이 65만 달러의 포스팅 액수를 제시받았다. 물론 이때마다 선수 본인과 국내 원 소속팀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채 포스팅을 포기했다. 2009년 초 최향남(당시 롯데)은 101달러의 포스팅 응찰액을 기록해 역대 포스팅시스템 최저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선수들이 이렇게 저평가를 받으며 굴욕을 맛본 근본적인 이유는 딱 하나다. 여전히 메이저리그의 시각에서는 국내 프로선수의 기량이나 평균연봉의 레벨을 마이너리그로 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아무리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나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메이저리그 구단의 입장에서는 프로리그의 수준과는 상관없는 얘기다. 단기 대회에서의 성적은 그냥 참고 자료일 뿐이다.

아무리 류현진이라고 해도 이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2002년 시즌을 17승6패 평균자책점 3.08로 마친 임창용이 65만 달러를 제시받았을 때 당시 소속팀 삼성은 '굴욕'이라고 여기며 포스팅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 액수가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을 보는 기준에서는 꽤 합리적인 금액이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류현진이 얼마나 많은 응찰액을 제시받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10년전 임창용에 비해 획기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만약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은 조건, 이를테면 100~200만 달러 수준의 응찰액을 제시받는 상황이 왔을 때 과연 한화는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20억 원 남짓을 받고 류현진을 내주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구단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3시즌은 새로운 감독이 이끄는 첫 시즌이다. 새 팀에 부임하는 감독 입장에서는 '에이스 잔류'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류현진의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이 결코 '장밋빛 미래'만은 아니라는 소리다.

영리한 류현진도 이런 험난한 시나리오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지난 2일 "기회가 되면 꼭 보내주면 감사하겠다"고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도 구단을 향한 사전 신호로 해석된다. 결국은 한화의 결정에 모든 것이 달려있는 셈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