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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홈런 공장장'으로 추락. 뭐가 문제일까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09-02 20:41


2일 오후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가 열렸다. 1회초 1사서 KIA 김선빈에게 좌중월 솔로홈런을 허용한 한화 박찬호가 아쉬워하고 있다.
대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9.02.

불혹의 '코리안특급'에게 풀타임 선발은 역시 무리였을까.

한화 베테랑투수 박찬호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어떤 투수든 긴 시즌 중에 제구력이나 밸런스의 난조로 인해 한 두 차례의 부진을 경험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박찬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시즌 초중반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유형의 투수가 됐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전까지의 박찬호가 땅볼로 아웃을 많이 잡는 '땅볼 유도형' 투수였다면, 최근의 박찬호는 '플라이볼 형' 투수가 됐다.

문제는 그때문에 피홈런 숫자가 최근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2일 대전 KIA전까지 올 시즌 총 10개의 홈런을 내줬는데, 이 중 무려 7개가 최근 5경기에 몰렸다. 그 전까지는 2게임 연속 홈런을 허용한 적도 없었으니 말그대로 최근에 홈런 사태가 난 셈이다. 전형적인 '플라이볼형 투수'로 홈런을 많이 맞던 과거 메이저리그 시절의 박찬호를 보는 듯 하다.


2일 오후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가 열렸다. 2회초 수비를 마친 한화 박찬호가 덕아웃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9.02.
땅볼 제조기에서 홈런 공장장으로

박찬호가 고국인 한국 프로야구 무대로 복귀한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크게 우려를 샀던 부분이 바로 '체력의 저하'였다. 1973년생인 박찬호는 한국나이로 40세다. '불혹'의 나이에 낯선 리그에서 힘좋고, 센스 넘치는 후배 타자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컸다.

그러나 시즌 중반까지는 풍부한 경험과 특유의 노련함을 무기로 이런 우려를 잠식시켰다. 이때는 유난히 땅볼로 아웃을 많이 잡았다. 과거 전성기 시절에는 150㎞를 훌쩍 넘는 포심 패스트볼과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파워커브로 삼진을 많이 잡았지만, 나이가 들어 구속이 저하되자 새로운 구종으로 변화를 준 결과다. 박찬호는 커터나 싱커, 투심 패스트볼 등 홈플레이트 앞에서 빠르고 간결하게 변하는 구종을 던져 타자의 범타를 유도해냈다. 그 결과 시즌 5승째를 따냈던 지난 8월 1일 잠실 LG전까지 우타자를 상대로 땅볼(73개)/뜬공(34개) 비율 2.15를 기록했다. 이는 다승 1위 장원삼(삼성)이나 평균자책점 1위 나이트(넥센)를 능가하는 리그 1위 기록이었다. 좌타자를 상대로도 1.26(땅볼 53/뜬공 42)을 기록해 전체 12위였다. 땅볼형 투수가 플라이볼형 투수에 비해 안정감이 높다는 것은 야구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후 8월 7일 대전 두산전부터 급격히 뜬공의 비율이 늘어났다. 이 경기부터 지난 8월 26일 대전 KIA전까지 박찬호는 총 4번의 선발 등판에서 우타자를 상대로는 2개의 홈런을 맞으며 1.25(땅볼 15/뜬공 12)의 비율을 보였고, 좌타자를 만나서는 드디어 땅볼(9개)/뜬공(11개) 비율이 0.82를 나타내며 뜬공이 더 많이 나왔다. 결국 좌타자에게는 무려 3개의 홈런을 얻어맞았다.

박찬호는 2일 대전 KIA전에서도 이런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3이닝 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해 9안타 2볼넷 1탈삼진으로 7실점을 기록했다. 한국 데뷔 후 최소 이닝에 피홈런 2개가 뼈아팠다. 그런데 이날도 9개의 아웃카운트 중 삼진으로 잡은 1개를 뺀 8번의 아웃카운트에서 땅볼/뜬공 비율이 '1'이었다. 뜬공이 그만큼 많이 나왔다는 증거다.


뜨는 타구가 많이 나오면 자연히 장타와 홈런이 나올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또 정타가 아니더라도 타구 반발력이나 바람의 영향, 그리고 구장의 크기 및 외야 수비 등의 변수에 의해 장타나 홈런이 나올 수도 있다. 최근 5경기에서 박찬호가 무려 10.80(23⅓ 이닝, 38안타 7홈런 28자책점)의 처참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4연패에 빠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체력의 저하, 볼끝이 사라졌다

박찬호의 갑작스러운 투구 스타일 변화와 그에 따른 부진은 결국 '체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40세의 박찬호가 시즌 100이닝에 근접하면서 투구 시 근육의 힘이 이전만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박찬호는 올해도 허리와 팔꿈치 등에 부상을 경험했다. 그러다보니 현재의 몸상태는 시즌 초에 비해 크게 약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박찬호는 전성기의 강속구형 투수에서 변화구형 투수로 변신했다. 그러나 변화구 역시 잘 구사하기 위해서 필요한 어느 정도의 힘이라는 게 있다. 그게 사라진 상태에서 던지는 변화구들은 치기 쉬운 먹잇감이다.

이날 박찬호의 투구를 현장에서 분석한 여러 스카우트들의 공통된 평가는 "이전 좋을 때에 비해 힘이 부쩍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초반 변화구의 볼끝이 사라졌다"였다. 한 스카우트는 "박찬호의 변화구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빠르게 '휙!'하고 변해서 범타를 유도해야 하는데 오늘은 밋밋하고 큰 궤적을 그렸다. 그러면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직구 위주로 투구패턴을 바꿨는데, 그 역시도 별로 좋은 구위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이날 박찬호는 1회 김선빈에게 투심 패스트볼(시속 140㎞)를 던졌다가 홈런을 맞았고, 3회에는 선두타자 나지완에게 커브(시속 122㎞)를 구사하다 홈런을 또 맞았다. 구질은 달랐지만 두 번 모두 공이 몸쪽으로 높이 떠서 들어왔다. 이는 공을 끝까지 힘있게 채면서 던지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박찬호가 이날 구사한 내용은 직구(포심) 32개(최고 146㎞)-투심 10개(최고 143㎞)-커브 6개(최고 129㎞)-슬라이더 24개(최고 138㎞)-서클체인지업 6개(133㎞)다. 최고 구속은 어느정도 나왔지만, 볼끝은 무뎠고, 궤적은 대부분 높게 형성됐다. 최근 심각한 타격 침체에 빠진 KIA 타자들에게조차 이런 공은 쉬웠다. 박찬호의 공을 후려치며 타격감을 회복한 KIA타선은 결국 이날 타자일순하며 17안타(3홈런)로 13점을 뽑아냈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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