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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미친듯이 홈런을 쏟아내더니,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침묵에 빠졌다.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25)가 지난 6월 16일 시즌 19홈런을 터트렸을 때, 야구 관관계자 대다수는 30홈런, 40홈런을 말했고, 팬들은 만년 하위팀 히어로즈의 선전과 함께 새로운 홈런타자 등장에 환호했다. 6월 16일까지 56경기에서 홈런 19개(1위), 타율 3할5푼1리에 51개(1위)의 타점을 쓸어담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강정호는 4월 16경기에서 7개를 홈런을 터트린데 이어 5월 27경기에서 7개, 6월 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09년 자신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23개)를 가볍게 넘어설 것 같았다. 더구나 강정호는 수비부담이 큰 유격수다. 뛰어난 클러치 능력과 함께 메이저리그 홈런타자를 연상시키는 호쾌한 스윙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박흥식 넥센 타격코치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 코치는 "1999년 이승엽이 타격폼이 흐트러져 한 달 정도 홈런을 때리지 못한 적이 있었지만, 강정호처럼 홈런을 펑펑 치다가 장기간 홈런을 때리지 못하는 경우는 못 본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정호는 왜 67일째 홈런을 터트리지 못한 걸까. 혹시 타격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 말고, 다른 요인이 강정호의 홈런 생산 능력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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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를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은 스포츠에서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자기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활약했던 투수 스티브 블레스가 갑자기 제구력 난조에 빠져 은퇴에 이르게 된 상황을 맞게 되는 데, 여기에서 비롯된 용어다.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는 선수나 좋은 활약을 하던 선수가 갑자기 극단적인 심리적인 부담으로 인해 깊은 부진에 빠졌을 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말이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이다. 볼넷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못하는 투수, 1루 송구 실책으로 인해 1루로 공을 던지지 못하는 야수가 이런 경우다. 스트라이크에 대한 심리적인 두려움 때문에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을 한 경우도 있다.
골프에서 이런 심리적인 위축 현상은 입스 증후군으로 나타난다. 입스 증후군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돌발적 근육 경련 현상을 뜻하는데, 퍼트를 할 때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손이 떨리는 현상이다.
강정호 또한 이런 케이스로 보인다. 홈런에 대한 부담감, 홈런을 쳐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심리적인 안정이 깨져 홈런을 때리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박흥식 코치는 "언제부터인가 타격 때 몸과 배트가 함께 나가면서 밸런스가 무너져 공을 받혀놓고 치지 못하고 있다"고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아무리 밸런스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대형타자가 두달 넘게 홈런을 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박흥식 코치 또한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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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코치는 강정호가 박병호와 달리 전형적인 홈런타자가 아닌 중장거리타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손목힘이 좋고 배트에 힘을 실어 공을 때리는 컨택트 능력이 좋아 전반기 홈런을 양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전반기 19개 홈런에 강정호 자신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덩달아 주위의 기대감도 커졌고, 홈런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점을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체력적인 어려움이 찾아왔고, 피로 누적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봉화직염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열흘 간의 공백은 강정호의 타격감을 흔들어 놓았다. 홈런을 때려야 한다는 중압감, 홈런을 때리지 못했을 때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홈런타자 강정호로부터 홈런을 앗아갔다.
외향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 중 어떤 유형이 야수선수로서 유리할까. 보통 외향적인 선수는 부담감을 비교적 쉽게 털어내고, 코치와의 소통에 유리하다. 반면 내성적인 선수는 치밀하고 꼼꼼하게 상대를 분석해 위기를 헤쳐나간다. 강정호는 내성적인 성격에 가깝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