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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이 리빌딩인가.
야구팀의 중추는 무엇일까. 팀을 세워진 건축물로 봤을 때 내력벽, 기둥, 보, 지붕틀에 치환될 수 있는 개념은? 강팀의 전제 조건으로 꼽는 '에이스, 마무리 투수, 포수, 톱타자, 4번타자' 쯤 되는걸까? 그렇다면 리빌딩은 궁극적으로 이들 중 셋 이상이 바뀌는 근본적 변화를 품은 세대 교체 쯤 되겠다.
진정한 의미의 리빌딩이 가능하려면 기존 터줏 대감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유망주가 뛸 수 있다. 기존 건축물을 헐어내야 새 건물을 올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유망주의 성장 기간은 새 건물 건축 기간과 같다. 다소 길수도, 짧을 수도 있다.
리빌딩의 주체도 문제다. 메이저리그는 감독(manager)과 단장(general manager) 간의 역할 분담이 비교적 분명하다. 선수단 운용은 감독, 선수단 구성은 단장이다. 팀 전력에 대한 중·장기적 플래닝의 권한은 단장에게 있다. 리빌딩은 조직의 미래와 운명이 걸린 결단이다. 소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은 이 역할 분담이 애매하다. 감독에게 지나치게 포괄적인 책임을 요구한다. 구단 내 객관적 평가 기준이 없는 탓에 모든 감독의 평가 기준이 최소 4위다. 객관적으로 8위 전력의 팀을 맡은 감독이 6,7위를 하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8개 구단 모든 감독들은 원래 전력과 관계 없이 일단 4강이 커트라인이다. 절반 이상만 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보니 감독은 프런트의 몫인 팀 구성과 크고 작은 변화에 민감하다. 성적에 대한 책임은 나 홀로 다 져야 하는 시한부 삶이기 때문이다. 단장을 정점으로 프런트 역시 감독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아주 사소한 트레이드라도 감독이 '노(No)'하면 못한다.(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모든 구단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팀의 주축 선수 트레이드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감독은 미래를 고민할 여유가 없다. 오직 현재가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장기적 시각과 단기적 시각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안되는 4강을 고집하다보면 때론 역선택도 일어난다. 장기적 시각에서 물갈이를 하는 편이 나은 팀도 선뜻 용단을 내릴 수가 없다. 절정의 거물급 선수를 팔아 유망주 3~4명을 데려오는 메이저리그식 트레이드. 현재를 팔아 미래를 사는 방식이 그 팀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인데도 어정쩡한 현상유지 속에 허송세월만 보낸다. 만년 하위팀의 악순환이다. 신인 선수의 진입 장벽이 낮았던 과거에는 하위팀이 드래프트 우선순위만으로도 판도를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즉시 전력, 특히 괴물 신인의 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그나마 검증된 거물 선수 영입의 유일한 제도였던 FA 역시 이미 혜택을 받은 많은 선수의 무리에 따른 부상과 도덕적 해이로 인해 판도 변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
어쨌든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 프로야구에는 진정한 의미의 리빌딩이 없다. 큰 폭의 제도 변화, 구단의 감독 임기 보장 등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리빌딩이란 용어 하에 진행되고 있는 움직임은 기껏해야 기존 틀을 유지한 채 진행되는 개·보수, 즉 리모델링에 불과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