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이 본 올시즌 LG의 빛과 그늘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8-21 09:13 | 최종수정 2012-08-21 09:13


프로야구 LG와 한화의 경기를 앞둔 19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김기태 감독이 팀내 최고고참 최동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전=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8.19/

올시즌 전반기 LG만큼 극단을 오간 팀이 또 있을까. 시즌 개막 전 LG는 한화, 넥센과 함께 전문가들이 꼽은 꼴찌 후보였다. 주전 포수인 조인성이 SK로 떠났고, 주축 투수 두 명이 경기조작에 연루돼 옷을 벗었다. 신바람 야구로 한시절 프로야구판을 뒤흔들었던 LG가 만신창이가 됐다. 1968년 생 젊은 지도자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만으로 결핍된 그 무엇을 채우기는 어려운 듯 보였다. 그런데 LG는 이런 예상을 깨고 시즌 초반 선전했다. 지난해 우승팀이자 '극강'으로 평가됐던 삼성을 개막 2연패로 밀어넣더니, 4월에 8승8패 승률 5할을 기록한데 이어, 22승21패 승률 5할1푼2로 6월을 맞았다. 133경기를 치러야 하는 페넌트레이스 일정이 남아있었지만 팬들을 이전과는 다른 LG를 기대하게 됐다.

그러나 딱 100경기를 치른 8월 20일 현재 LG는 43승3무54패, 승률 4할4푼3리로 7위다. 4위 두산에 8.5게임 뒤져있고, 꼴찌 한화에 5게임을 앞서 있다. 포스트 시즌 진출은 어려워졌고, 이제는 내년 시즌을 구상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LG는 왜 6~7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걸까. 내년 시즌 희망은 있는 걸까. 양준혁 SBS 야구해설위원은 올시즌 LG에서 빛과 그늘을 모두 봤다고 했다.

LG는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나

결국 정규시즌 장기 레이스에서 성적을 내려면 백업자원이 좋아야 한다. 4월 시즌을 시작하면 시즌 중반 반드시 한 번쯤 고비를 맞게 되는 데, 이 때 지친 선수를 대신해줄 대체선수가 있어야 한다. 이런 선수가 많은 팀을 '체력이 좋은 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페넌트레이스는 포스트 시즌처럼 몇 경기로 승부를 내는 단기전이 아니다. 팀의 평균 전력이 그대로 반영되는 장기레이스다. 이런 면에서 LG는 부족한 면이 적지 않다.


프로야구 한화와 LG의 경기가 17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펼쳐졌다. 3대2 한점차 승리를 거둔 LG. 김기태 감독이 선수들과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대전=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8.17/
양준혁 위원은 LG가 전력에 비해 오히려 시즌 초반 선전한 것이라고 했다. 6~7월 성적 급락을 비난할 게 아니라 시즌 초반 선전을 칭찬해줘야 한다고 했다. 야구인들에게 한때 LG는 좋은 자원을 쌓아두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팀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LG 2군에 가면 억대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선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듯 보이면서도, 주전급 선수를 빼면 1군에서 뛸 수준에 못 미치는 선수가 많은 팀이 LG다.

양준혁 위원은 "팀이 성적이 나려면 수비력-선발투수-마무리투수-타력 순으로 좋아야 하는데, LG는 가장 중요한 수비, 선발투수에서 문제가 많다. 선발투수는 주치키 말고 로테이션을 제대로 지키는 선수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LG는 실책 75개로 8개 구단 중 가장 많다. 중요한 순간 어이없는 수비 실책이 팀 분위기를 망쳤다. 흔히 센터라인, 즉 포수와 2루수, 중견수로 이어지는 중앙라인이 좋아야 강한 팀이라고 하는데, LG는 이 부분이 특히 취약하다.

타율 3할 안팎을 기록 중인 이병규 이진영 정성훈 최동수가 버티고 있는 타선은 화려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득점권 타율이 2할5푼1리로 시즌 타율 2할6푼6리를 밑돈다. 8개 구단 중 시즌 타율보다 득점권 타율이 안 좋은 팀은 LG가 유일하다.


LG는 왜 내년이 기대되는가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간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한 LG. 생체적인 나이나 프로 경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게 큰 경기 경험, 자신감이다. 지난 9년 간 하위권을 맴돌았던 LG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LG와 KIA의 2012 프로야구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가 16일 잠실 야구장에서 펼쳐 졌다. LG 이병규가 4회말 1,3루 찬스에서 헛스윙 삼진 판정을 받자 김기태 감독이 문동균 주심에게 파울이라며 항의를 하고 있다. 이병규는 결국 헛스윙 아웃으로 판정 됐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2.08.16/
양준혁 위원은 "초반 잘 해주던 LG가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오랫동안 하위권에서만 머물러 있다보니 중요한 순간,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런 힘이 부족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적 부진과 자신감 결여, 위기 극복 노하우 부족 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비록 10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은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보통 성적이 안 좋으면 감독은 세대교체, 리빌딩을 앞세워 인위적으로 선수단 개편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코칭스태프와 베테랑 선수 간에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고, 선후배간에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또 성적에 부진에 따른 책임 소재를 놓고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LG가 그랬다.

하지만 올시즌 LG는 분위기가 다르다. 김기태 감독이 "선수들이 감독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할만큼 팀 분위기가 안정적이다.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가 깊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무리한 세대교체를 지양하면서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형식의 리빌딩 작업도 좋은 점수를 줄만 하다. 양준혁 위원은 "최동수 같은 고참 선수가 잘 해주고 있지만, 고참 선수와 젊은 선수를 모두 써가면서 베테랑 선수를 자극하고 젊은 선수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고 했다. 비록 올시즌 LG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내년 시즌이 기대가 되는 이유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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