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 최형우 솔직 고백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2-08-06 07:55 | 최종수정 2012-08-06 07:55


웃고 있는 삼성 최형우 대구=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8.02.

인터뷰 도중 옛 생각에 잠긴 최형우 대구=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8.02.

지난해 홈런왕 최형우(29·삼성)는 올해 잊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큰 기대를 받았지만 극도로 부진했다.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마수걸이 홈런이 한 달 이상 나오지 않자 2군으로 당장 보내라는 악성 댓글이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랬던 그가 최근 한국야구위원회(KBO) 선정 7월 MVP에 뽑혔다. 지난 한달 동안 17경기에서 58타수 19안타, 6홈런, 17타점, 타율 0.328로 월간 홈런1위, 타점 2위에 올랐다. 시즌을 시작했던 4월부터 6월까지의 최형우와는 분명 달랐다. 2일 찜통더위로 후끈 달아오른 대구구장에서 만난 그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지난 4개월을 돌아볼 때는 목소리 톤이 약간 올라가기도 했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그는 아픈 과거를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안 될 때 안 해본 게 없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더이상 말할 필요가 있겠나." 지인들의 권유로 대구의 한 병원을 찾았다. 최형우는 밑바닥을 치고 올라온 대기만성형 스타다. 그는 어려울 때 누구에게 의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항상 자신을 믿었다. 그런데 찾아간 병원에선 "그동안 안 좋았던 걸 다 털어놔라"고 했다. 최형우는 빠져들지 못했다. 결국 3~4번 상담받고 그만뒀다

최형우는 지난해 최고의 성적을 냈다. 홈런, 타점, 장타율 3관왕에 올랐다. 올해 최소 3할 이상을 기대했던 타율이 2할 초반에서 맴돌았다. 무엇보다 비난받았던 건 홈런이다. 35경기 만에 첫 홈런(5월31일 대전 한화전)을 류현진으로부터 빼앗았다. 2군까지 내려갔다 왔다. 6일 현재, 타율 2할4푼9리, 9홈런, 52타점을 기록 중이다. 많이 올라온 성적표다.

최형우는 시즌 초반 미칠 것 같았다. "전혀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조언을 해줬다.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때의 심정은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당시 그의 심리 상태는 오락가락의 연속이었다. '올해는 마음 편하게 가자'라고 마음 먹고 1주일을 보냈다. 또 '그래도 죽기살기로 해보자'고 생각하고 또 1주일이 흘렀다. 타격감은 요동쳤다. 한 경기 좀 살아나는 것 같았다가 그 다음 경기에서 죽을 쑤는 식이었다.

여전히 50점 수준이다


그는 7월 MVP에 뽑혔지만 지금의 타격감에 만족하지 못했다. "지난해가 100점이었다면 시즌 초반은 30점에서 40점 정도였고, 지금은 50점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 개인 성적 보다 우선하는게 팀 성적이다. 최형우가 한참 부진했을 때 삼성도 비슷한 그래프를 그렸다. 삼성은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를 넘어 아시아시리즈까지 3관왕을 했다. 그랬던 삼성이 7위(8개팀 중)까지 떨어졌다. 삼성 4번 타자 최형우의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삼성이 중간 순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팀이 이기니까 내가 안타를 못 쳐도 마음이 편하다. 지난 4~5월에도 삼성이 1위였으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승엽이형 존재감이 낯설었다

최형우는 4번 타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 바람은 금방 이뤄졌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인터뷰 다음날인 지난 3일 부산 롯데전부터 최형우를 4번에 세웠다. 이승엽은 3번, 박석민은 5번에 배치했다. 최형우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4번을 치다 슬럼프가 와서 타순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최형우는 "난 4번이 좋다. 타순을 옮겨다니는 게 싫다"면서 "최근에 상대 투수가 4번 박석민을 고의사구로 내보내고 5번인 나와 상대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열받는 건 아니고 내가 정말 너무 못했구나라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최형우가 이승엽(3번) 바로 뒤 타석에 들어갔을때 부담을 갖는다고 했다. 부담을 느껴서 자신의 스윙을 못한다고 분석했다. 최형우는 부담감과는 좀 다르다고 했다. 이미 홈런으로 국내 무대를 평정했던 이승엽의 존재감에 놀랐다고 했다. 최형우와 이승엽이 1군에서 함께 주전으로 뛰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최형우가 2002년 신인으로 삼성에 입단했지만 당시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이승엽과 한데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승엽이형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팬들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뒤에서 기다리는데 이 반응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타석에 들어갔는데도 팬들은 승엽이 형을 연호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는 2005년 삼성에서 방출됐다가 경찰청에서 부활한 후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밑바닥의 쓴맛을 보고 최고까지 올라온 오뚝이다. 최형우는 팬들에게 한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삼성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특정 선수가 잠깐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믿고 기다리면 올라온다." 그가 넉살좋게 웃었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