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멘탈스포츠' 명제를 입증한 최희섭의 활약비결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04-16 14:38


프로야구 KIA와 LG의 경기가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졌다. 최희섭이 1회초 2사 2루 선제 투런포를 날리고 있다.
잠실=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4.15/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미워할 수 없는 남자' KIA 최희섭(31)의 깜짝 대활약이 자칫 침체의 늪에 빠지려던 팀에 새로운 희망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제 겨우 5경기에 출전했을 뿐이다. 하지만 최희섭의 부활은 마치 한편의 반전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그가 주인공인 드라마에는 실패와 좌절, 절치부심 그리고 반전 활약이 골고루 담겨있다. 어떤 면에서는 전형적인 무협소설 속의 영웅담과도 같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팀 훈련을 거부하며 트레이드를 자청했던 최희섭이다. 이로 인해 스프링캠프에서도 제외돼 완도에서 2군과 함께 훈련해야 했다. 한바탕 대소동을 겪은 데다 훈련환경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최희섭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지난 10일 1군 등록 후 5경기에서 무려 4할4푼4리(18타수 8안타) 1홈런 6타점으로 '4번타자'의 위용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같은 최희섭의 맹활약을 가능케했던 비결일까.


프로야구 KIA와 LG의 경기가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졌다. 최희섭이 1회초 2사 2루 선제 투런포를 날리고 있다.
잠실=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4.15/
마음이 바뀌니 야구도 늘었다

최희섭의 반전 대활약을 비결을 알기 위해 KIA 이순철 수석코치와 박철우 2군 총괄코치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기에 이렇게 잘 치는 건가요?"

이 수석코치는 과거 해설위원 시절부터 최희섭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지적을 해온 데다 KIA 부임 이후에도 최희섭을 집중관리해 온 인물이다. 박 코치는 최희섭이 스프링캠프에서 제외된 뒤 2군 선수단과 훈련할 때 이를 지켜봐왔다. 이들만큼 최희섭의 변화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답변은 같았다. 즉각적으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답이 나왔다. '야구는 멘탈스포츠'라는 명제가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다. 이 수석코치는 "타격 자세나 스윙 궤도 등 기술적인 면에서는 지난해와 똑같다. 새로운 변화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오로지 야구를 대하는 마음, 경기에서의 집중력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박 코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박 코치는 "최희섭 정도의 선수는 새롭게 기술을 익히거나 타격폼을 수정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 2군 캠프에서도 짜여진 훈련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훈련만큼은 무척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했다. 그런 마음의 변화가 활약의 비결 아닐까"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KIA와 LG의 경기가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졌다. 최희섭이 1회초 2사 2루 선제 투런포를 날리고 김선빈의 축하를 받고 있다.
잠실=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4.15/

기술을 능가하는 멘탈(정신력)의 힘

결국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선수 본인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수석코치는 "야구가 멘탈스포츠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멘탈, 즉 정신력이 굳건히 받쳐줄 때 가지고 있는 기술도 발휘될 수 있다. 지난해까지의 최희섭은 타석에서 산만해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기술이나 자세는 일정한 형태로 분류하거나 계량할 수 있는데 반해 정신력이라는 영역은 설명하기가 매우 애매하다. 선수를 지도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기술이나 자세를 지도할 때처럼 일괄적으로 선수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이는 오로지 본인만이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은 이것을 깨우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서 일류와 이류의 차이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최희섭은 지난해 부상과 개인적인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며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올해 초에는 선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겪었다. 시련은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최희섭의 경우에는 전자보다는 후자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위기를 겪으며 마음을 더 강하게 먹게되고, 정신력이 한층 성장한 것이다.

이 수석코치는 "최희섭이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것은 야구장에서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전의 최희섭은 훈련에서 겉돌았다. 그러나 복귀 이후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고 있다"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복귀 이튿날인 지난 11일. 최희섭은 자청해서 조기 특타에 참여한 뒤 메인 타격훈련을 했다. 그러고 나서도 또 추가특타를 하려고 했다. 이 수석코치가 "그러다가 혹시라도 허리 아프면 안된다. 좀 살살해라"고 말렸지만, 최희섭은 "문제없다"며 또 배트를 휘둘렀다.

독기 품은 최희섭 "홈런왕에 도전한다"

이 수석코치는 마지막으로 "최희섭이 마음을 확실하게 먹고, 나름의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행동양식이 천양지차로 다르다. 최희섭이 확실하게 하나의 목표를 세웠기에 더 강한 집중력을 보이는 것이라는 게 이 수석코치의 분석이다.

정확한 분석이다. 최희섭은 이미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시즌에 임하고 있다. 최희섭은 지난 11일 복귀하자마자 "올해는 개인타이틀에 욕심을 좀 낼 것이다. 쟁쟁한 1루수들이 많은데, 홈런왕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팀에 복귀한 입장에서 개인적인 목표를 밝히는 것은 어쩌면 '개인주의'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희섭의 말에는 치기가 없었다. 진심으로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는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최희섭이 4번타자로서 장타를 펑펑 쳐내면 이는 KIA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목표의식이 뚜렷한 게 낫다. 실제로 최희섭은 "장타를 의식하겠다"고 한 뒤 5경기에서 7할2푼2리로 장타율 2위에 올라있다. 목표가 확실하니 그에 맞는 활약을 하게 된 것이다.

최희섭은 "지난해까지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그냥 팀에 필요한 것만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탓에 집중력도 떨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확실히 '홈런왕'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를 위해 독기있게 나가는 최희섭이 오히려 팀에 더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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