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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18패'로 줄였을 뿐이다. LG에겐 아직까지 설렘은 사치다.
아직 갈 길 멀다
지난 겨울 LG는 뜻하지 않게 경기조작 파문에 휘말렸다. 선발진의 주축으로 기대됐던 투수 2명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엄청난 손실이었다. 팀은 당장 전력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팀이 안게 되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까지 감안하면 후유증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측될 수밖에 없었다.
경기조작 사건이 채 마무리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몇몇 타구단 관계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LG가 지난 연말 FA 시장에서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을 잃었는데, 그때만 해도 차라리 나았다. 선발투수 2명을 추가로 잃은 것까지 합하면 거의 '20패'에 해당하는 손실이 될 수 있다."
물론 주요 전력의 이탈을 구체적인 승패로 계량화해 예상하는 건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LG의 처지가, 타구단들이 걱정할 정도로 심각했다는 걸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야구 관계자들의 우려처럼 처음부터 20패를 떠안고 시즌을 맞이한 것이라면, LG는 이제 겨우 2패를 되찾아온 것 뿐이다. 아직 갚아야 할 18패가 남아있다. 갈 길이 멀다.
벌써 착시현상?
불과 개막 2연전을 치렀을 뿐인데 '착시현상'이 나타날 조짐이다. 1승1패의 넥센과 2연승의 LG는 굉장히 힘이 세진 것처럼 보이고 2패의 KIA는 흡사 망가진 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착시현상을 느낄 때가 많다. 성적이 좋은 팀의 라인업이 전광판에 뜬 걸 보면서 "와! 도무지 쉬어갈 틈이 안 보이네"라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같은 팀이 연패에 빠지면 똑같은 라인업을 보면서 "휴~(한숨), 도무지 칠 타자가 없네"라는 말이 나온다. 투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시즌은 생갭다 훨씬 길다는 의미다.
LG는 불과 이틀만에 팬들에게 착시현상을 줄만한 결과물을 얻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당장 10일부터 열리는 롯데와의 홈 3연전이 만만치 않다. 삼성과의 2연전에서 결과적으론 2연승이었지만, 아마도 코칭스태프에겐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내부의 긍정적 변화
착시현상을 떠나 어쨌든 희망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2연승을 했다는 것 자체보다 LG가 보여준 '이기는 과정'이 뭔가 눈길을 끈다.
일단 추가점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LG 관계자들은 지난달 시범경기를 치르면서 "작년과 달라진 점이 눈에 띈다면, 그건 추가점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 의욕을 확실하게 떨어트리는 추가 1,2점을 뽑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7일 개막전. LG는 3회에 이병규의 만루홈런으로 4점을 낸 뒤 4회에 곧바로 2점을 추가했다. 8일 2차전에선 8회에 심광호의 희생플라이와 오지환의 3루타로 2점을 냈고, 그후 박용택이 삼진에 그쳤지만 이대형의 중전 적시타로 3점째를 추가했다. 예년의 LG는 찬스에서 흐름이 끊겼다가 그후 추가점을 뽑는 일이 드물었다. 승리를 부르는 마지막 1,2점을 추가하지 못해 상대에게 추격을 허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번 2연전에선 그게 아니었다. 집중력과 끈기가 좋아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타자의 좌우 유형에 관계 없이 투수를 소신껏 운용한다는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2차전 5회에 왼손 이승엽 타석이 돌아오는 시점에 오른손투수 유원상을 냈다. 1차전에서도 오른손 잠수함 우규민이 이승엽을 상대하기도 했다. 결과를 떠나 투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LG에겐 '좌(타자)-좌(투수), 우-우 돌려막기'는 구시대 유물이다.
한 베이스 더 가려는 주루 플레이도 치열해졌다. 마무리투수 리즈가 8일 경기에서 다소 불안했지만 어쨌든 이틀 연속 세이브를 지켜냈다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LG에게서 분명 봄기운이 느껴진다. 내부로부터 점화된 경쟁의 불길이 커진다면, LG도 10년만에 '치열한 가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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