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145km 김병현의 직구는 거침이 없었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3-29 17:47


프로야구 롯데와 넥센의 시범경기가 29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펼쳐졌다. 김병현이 6회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투구를 하고 있다. 부산=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첫 이닝은 70~80점, 두번째 이닝은…."

29일 부산 롯데전에 첫 등판한 넥센 투수 김병현(33)의 자평이다. 김병현은 최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에서는 제대로 선발투수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목표가 없다. 마운드에서 제대를 공을 던지는 게 목표다"고 했다. 1999년 미국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떠난 후 13년 만에 국내 복귀. 이런 김병현에게 김시진 넥센 감독은 선발을 맡기기로 했다.

롯데전은 김병현이나 넥센 모두 의미있는 경기였다. 김시진 감독과 김병현 모두 희망을 가질만한 경기였다. 더구나 이날 경기는 올시즌 한화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와 비교가 될만 했다.

박찬호보다 나았다

1⅔이닝 동안 8타자를 상대해 1안타 무실점 1볼넷 1사구, 직구 최고 시속 145km. 다이나믹한 투구폼, 공격적인 투구로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을 상대하던 김병현은 여전했다. 첫 등판이었지만 김병현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직구로 상대 타자를 공략했다.

첫 타자인 4번 홍성흔을 볼카운트 1-2에서 우익수 플라이로 잡은 김병현은 좌타자인 박종윤을 3루수 플라이, 문규현을 2루수 땅볼로 처리, 삼타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김병현은 7회말 패턴을 바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변화구를 시험했다. 선두타자 황재균에게 변화를 던져 좌익수쪽 2루타를 내준 김병현은 왼손 대타 권영준을 유격수 땅볼로 처리,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잇따라 타석에 들어선 좌타자 김문호를 볼넷, 이승화를 사구로 내보내 1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김병현은 여유가 있었다. 살짝 웃음까지 내비쳤다. 오랜만의 실전 등판이었지만 시범경기는 어디까지나 테스트일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김병현은 이어 후속타자 조성환을 포수 파울플라이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투구수 43개, 스트라이크가 24개였다.


29일 롯데전에 등판한 넥센 김병현. 부산=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먼저 데뷔전을 치른 박찬호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박찬호는 지난 21일 롯데전에서 3⅓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안타 6개를 내주고 4실점했다. 비록 이닝수가 적었지만 김병현이 훨씬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박찬호가 어정쩡한 스피드에 무딘 변화구로 통타를 당한 반면, 김병현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씩씩하게 상대 타자를 압박했다. 6회 홍성흔과 박종윤을 상대로 던진 공 8개 모두 직구였다. 7회 밸런스가 흐트러지고, 제구력이 흔들렸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7회 밸런스가 흔들린 것은 오랜 공백과 경기전 불펜 투구를 60개나 했기 때문이다. 김병현은 "경기전 살짝 긴장을 했으나 불펜에서 공을 던지면서 마음이 차분해 졌다"고 했다. 이날 첫 이닝 직구, 두번째 이닝 변화구 체크는 김병현과 코칭스태프가 상의해서 결정했다.


김시진 감독은 "직구 구속은 오늘이 베스트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한다. 6회는 90점 정도, 7회는 60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김병현 본인은 박하게 줄 것 같다"고 했다. 김병현도 변화구가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했다. 왼손타자를 상대로 싱커를 던져야 하는데 구위가 안 좋아 던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7회 변화구가 안 좋아지면서 직구까지 흔들렸다"고 했다. 7회 선두타자 황재균에게 내준 좌익수쪽 2루타도 변화구였다.

정규시즌 등판은 언제쯤

김병현은 라쿠텐 소속으로 지난해 7월 마운드에 오른 후 공식경기 등판 기록이 없었다. 2008년 3월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후 3년 가까이 정상적인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라쿠텐에 입단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난 3년이 사실상 공백기였다. 김시진 감독이 김병현의 등판 일정에 신중한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난 1월 29일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 처음 공을 만진 김병현은 지난 25일 불펜에서 100개 넘게 공을 던졌다. 컨디션이 좋다며 예정된 투구수를 넘겼다. 팀의 주축투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김시진 넥센 감독은 등판 일정에 대해 조심스럽다. 그동안 김병현이 부담을 가질까봐 스피드건을 끄고 피칭을 하게 했다.

김시진 감독은 "첫 등판의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던진 후 몸 상태가 중요하다"고 했다. 등판 후 회복 속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시진 감독은 일단 김병현을 4월 4일 2군 경기에 내보낼 생각이다. 물론, 선발로 뛰려면 앞으로 투구수를 늘려야 한다. 김시진 감독은 "2군 경기때는 오늘보다 15개 정도를 더 던지게 할 생각이다"고 했다. 김병현은 2군 경기 4~5경기에 나가 페이스를 끌어올린 뒤 이르면 4월 말쯤 1군 무대를 밟을 전망이다. 물론, 29일 롯데전에서 나타난 밸런스 문제를 이 기간에 해결해야 한다.

유니폼이 없네

야구팬들에게 김병현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등번호 49번. 그런데 김병현은 11번이 박힌 선배 이정훈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었다. 28일 잠실 두산전이 끝나고 넥센 선수단은 유니폼 등 세탁물을 구단 프런트에 맡겼다. 그리고 곧장 부산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김병현의 유니폼이 없었다. 유니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이다. 넥센은 롯데에 양해를 구하고, 김병현에게 투수 최고참인 이정훈 유니폼을 입게 했다. 공식 자료를 보면 김병현은 1m78, 이정훈은 1m82. 김병현에게 롯데전은 아주 특별한(?) 데뷔전이었다.

부산=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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