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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홈런과 100타점, 만약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타자의 최종 목표물은 홈런이 아니다. 타점이다. 오릭스 이대호에게도 마찬가지다. 다시 이대호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소속팀 오릭스가 홈런포가 실종된 상태다. 어쨌든 이대호가 4번 타순을 맡고 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의 홈런 실종에 대한 우려는 결국 이대호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시범경기 일정을 마친 이대호는 36타수 9안타로 타율 2할5푼, 3타점을 기록했다. 홈런이 없었다. 이대호와 함께 중심타선을 형성하게 될 2010년 홈런왕 출신 T-오카다 역시 부진했다. 감독의 우려가 나올만도 하다. 그나마 오카다 감독이 조심스럽게 표현한 측면이 있다. 소프트뱅크의 아키야마 감독 같은 경우엔 대놓고 "용병은 홈런을 쳐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오카다 감독이 요구하는 홈런이 과연 펑펑 넘기는 타구만을 의미하느냐 여부다. 좁은 의미로만 본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큰 의미로는 타점 생산력을 높여야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스몰볼에 의한 '공장식 득점'을 넘어서는, 화끈한 적시타를 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대호가 올해 30홈런을 칠 수만 있다면 대성공이다. 지난해 퍼시픽리그의 홈런 1위는 세이부의 나카무라 다케야였다. 48개를 쳤다. 이대호가 30개를 치면 지난해 기준으로 퍼시픽리그 2위 기록에 해당된다.
그런데 과연 일본 리그를 처음 경험하는 타자가 30홈런을 치는 게 쉬울까. 이대호의 파워를 감안하면 결코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앞으로 쏟아질 집중견제와 리그 환경의 차이를 감안하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시선을 타점으로 돌려보자. 나카무라 다케야가 지난해 116타점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리그 타점 2위는 역시 세이부의 나카지마 히로유키였는데 100타점이었다.
이대호가 보유한 배트 컨트롤과 정확성을 감안하면 찬스에서 안타 한두개씩 치는 건 홈런에 비해 한결 수월한 일이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국내프로야구의 몇몇 코치들은 이대호가 30홈런 보다는 일단 80타점을 넘기는 방향으로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 리그든 마찬가지다. 1사 1,3루에서 느린 내야땅볼로 주자 한명을 불러들였다 치자. 팬들에겐 미흡할 지 모르겠지만 타자는 웃으면서 덕아웃으로 돌아갈 수 있다. 타점은 타자 최후의 덕목이며 그만큼 가치있는 목표물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홈런을 의식하면, 극단적인 홈런 스윙을 하게 되면, 오히려 타격감이 나빠질 가능성이 생긴다. 홈런을 많이 쳐서 타점을 끌어올린다는 목표 보다는 타점을 또박또박 내면서 어쩌다 스윙 타이밍이 맞으면 홈런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물론 타점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거액 몸값의 용병인 이대호가 타점 생산력마저 떨어진다면, 그때 가서는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단 이대호의 여유있는 자세는 긍정적이다. "정규시즌 개막 이전까지는 홈런을 기대하지 말라"며 여유를 보였다. 25일 산케이스포츠에 따르면 시범경기를 마친 이대호는 "개막하면 풀스윙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본게임이 시작되고 나서도 홈런이 한동안 나오지 않을 경우엔 분명 또다른 아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게 틀림없다. 이때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타점을 쌓아갈 수 있어야한다.
나카무라 다케야는 48홈런에 116타점을 기록했고 나카지마 히로유키는 16홈런에 100타점이었다. 한시즌 동안 10홈런만 쳐도 상관 없다. 만약 80타점을 넘어 100타점 근처까지만 갈 수 있다면, 이대호는 분명 연착륙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