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달라졌다는데...어떻게 바꼈나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01-08 13:48


박찬호(왼쪽에서 세 번째)가 선수단 단체사진 촬영 때 맨 뒷줄에서 의자 등받이 난간에 힘겹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다. 앞에서는 활짝 웃는 표정이지만 뒤에서 보면 위태롭고 익살스럽다. 대전=최만식 기자

위 사진과는 대조적으로 단체사진 앞 모습은 늠름하고 멋있다. 대전=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사실 저희도 놀랐습니다."

6일 '전쟁같은' 시무식을 치른 뒤 한화 프런트들이 내뱉은 소감이다.

이들을 놀라게 한 이는 돌아온 스타 박찬호(39)다. 포스트시즌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정신이 없던 프런트들은 내내 박찬호가 신경쓰였다.

그동안 풍문으로 들어왔던 '고자세' 박찬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불안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국식 훈련을 처음 접하는 자리에서 혹시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였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완전히 달라진 '저자세' 박찬호를 확인했을 뿐이다. 입단식(12월 20일) 후 첫 행보로 후배들과 티타임을 갖고, 선수끼리 단합대회(3일)에서 뜻깊은 케이크를 깜짝 선물했던 박찬호의 행보는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듣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박찬호가 먼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니까 구단도 선수단도 한결 안심된다"고 말했다.

'대스타' 박찬호는 버렸다

시무식이 끝난 뒤 재미난 풍경이 연출됐다. 선수단 단체사진 촬영을 위해 덕아웃에 있던 긴의자들이 임시 무대로 설치됐다. 1, 2군 포함해 60여명이 한꺼번에 사진을 찍으려면 학교 졸업사진처럼 계단식 자리배치가 필요했다. 박찬호는 앞쪽 편한 자리를 놔두고 맨 뒷줄에 섰다. 이날 단체 촬영에서는 가장 안좋은 자리다. 의자 등받이 끄트머리에 발끝만 살짝 걸쳐놓고 줄타기 곡예를 하듯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넘어질까봐 바로 옆에 있던 전임 주장 신경현과 서로 붙잡고 매달렸다. 앞에서는 활짝 웃는 표정이지만 뒤에서 보면 바들바들 떨었다. 뉴스 앵커가 상의는 정장을 갖춰입고 하의는 반바지를 걸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좋은 자리를 후배들에게 양보한 박찬호였다. 박찬호의 배려는 합동 인터뷰 때도 빛났다. 자신을 포함해 송신영 김태균 류현진 등 4명이 방송 인터뷰 대표로 뽑혔다. 한쪽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워밍업이 시작됐고, 날씨도 제법 추웠다. 박찬호는 대뜸 오성일 홍보팀장에게 "인터뷰를 마지막 순서에 하겠다"고 요청했다. 자기가 먼저 인터뷰를 하면 다른 후배들은 그만큼 추운 데서 떨며 기다려야 하니 차라리 자신이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한대화 감독이 훈련을 지켜보던 중 박찬호를 불러 "장갑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박찬호는 불편했던지 잠깐 장갑을 벗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한 감독은 혹시 장갑을 챙겨 오지 않았나 걱정이 돼 던진 질문이었다. 박찬호는 장갑을 찾는 한 감독이 장갑이 필요해서 그런 줄 알고 "여기 제 장갑 드릴까요"라며 장갑부터 내밀었다. 이에 한 감독은 "아니, 난 네가 장갑 없는 줄 알고 없으면 내것 줄려고 했지"라며 웃었다. 박찬호의 배려심에 한 감독은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취재진들과의 가벼운 티타임 도중에 기자에게 먼저 농담을 건네고 "10승 할 수 있도록 기를 보태달라"며 먼저 악수를 청하는 등 '미디어 프렌들리'를 과시했다. 말 한 마디 건네기 힘든 '메이저리거'가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다 한다

한화 프런트는 박찬호가 입단 한 이후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 단연 박찬호에 대한 요청이 많다. 박찬호는 새출발을 앞두고 몸 만들기에 집중하기로 한 만큼 개별 인터뷰는 사양하기로 한 상태. 그런데도 미디어의 요청은 끝날 줄 모른다. 결국 한화 구단은 원칙을 정했다. 앞으로 인터뷰 등 한화 선수로서 일정에 대해서는 모두 구단이 알아서 정하기로 한 것이다. "인터뷰 등 경기 외적인 일에 대해서는 훈련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구단이 '애정남' 역할을 할테니 믿어달라"는 구단의 요청에 박찬호도 동의했단다. 박찬호의 개인 매니저 역시 앞으로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는 시무식 때 매니지먼트사 '팀61' 소속의 매니저를 데리고 왔다. 한화 구단은 시즌이 시작되면 한화의 선수로서 박찬호의 모든 스케줄은 구단에서 관리하도록 할 방침이다. 박찬호는 시무식 때 이례적으로 언론사 인터뷰를 3차례나 소화하는 강행군을 했다. 박찬호는 7일 미국으로 먼저 떠났기 때문에 앞으로 얼굴 볼 날이 많지 않으니 구단에서 먼저 그렇게 하자고 했다. 피곤하더라도 참고 양해해 달라고 했더니 박찬호는 군소리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에 한화 구단은 "싫은 표정 하나도 짓지 않고 한국식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고 전했다. 박찬호 역시 구단 관계자에게 "앞으로 저 때문에 별도로 신경쓰거나 배려하지 말고 나이 든 신인 선수가 왔다고 생각하고 똑같이 대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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