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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환경'에서 출발해본 기억이 별로 없는 LG 김기태 감독. 사령탑 취임 첫해를 일단 엄청난 전력 손실과 함께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근성'은 여전하다.
김기태 감독은 운이 없다. 최근 몇년간 LG의 상황을 기억해보면 이같은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전임 김재박 감독이 2007년부터 3년간 LG를 맡았다. LG는 당시 FA 투수 박명환을 4년간 40억원에 영입했다. 신임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후 박명환이 이름값에 어울리는 성적을 전혀 못 냈지만, 그건 결과론이다. 어쨌든 LG는 가장 주목받은 FA 영입을 했다. 또한 2009시즌을 앞두고 이진영과 정성훈을 데려와 야수진을 보강했다.
김기택 감독은 이전 감독들과는 거의 정반대 여건에 놓여있다. 감독 취임후 얼마 지나지 않아 FA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이 각각 SK, 넥센, 한화로 이적했다. 참 절묘하게도 포수, 야수, 투수 포지션에서 주요 선수가 한명씩 빠져나갔다. 김기태 감독이 뒷목을 부여잡을만한 일이었다.
올겨울 LG는 용병투수인 주키치와 리즈를 눌러앉힌 걸 제외하면 전력보강이 전혀 없다. 오히려 큰 손실이 생겼다. 선물은 커녕, 감독에게 고민만 잔뜩 생길만한 상황인 것이다. 모든 감독은 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한다. '없어도 되는 선수'란 감독 입장에선 없다. 기나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태연하다. 지난달 30일까지 진주 마무리캠프 일정을 마친 김 감독은 "빠져나간 선수들이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도 FA 보상선수로 세명을 받게 된다. 그럼 된거다. 외부 FA 영입을 않겠다고 공언했으니 정대현 같은 선수가 미국 진출에 실패하고 돌아오더라도 잡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있는 선수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늘 밑바닥에서 출발해왔다. 쌍방울 출신인 김 감독은 친정팀이 공중분해됐지만 기량을 인정받아 삼성과 SK를 거치며 15시즌 동안 뛰었다. 프로선수에게 '돌아갈 친정팀'이 없어졌다는 건 치명적인 여건일 수 있지만, 결국엔 살아남았고 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현역 은퇴후에는 일본프로야구 한신과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했다. 코치 연수 시절, 아침 6시30분에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고된 생활을 했지만 타자 발굴 능력을 인정받았다. 요미우리에선 2군 정식 코치로 1000만엔 이상의 연봉도 받았다.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근엄 보다는 근성이 떠오르는 김기태 감독이다. 김 감독은 "진주 캠프에서 선수들이 잘 따라와줬다. 좋은 선수가 많고 적고는 관계 없다. 내년 시즌, 한번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특히 LG와 관련해선 다음 시즌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이 줄을 이었다. 반면 구단은 속으로 최악의 사태를 우려하곤 했다. 이번엔 조금 다른 것 같다. 외부에선 LG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정작 감독은 차분하게 "내 스타일대로 해보겠다"고 말한다. 지나친 낙관도, 불필요한 비관도 없다. 10개월후, LG팬들은 결과를 받아쥐게 될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