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때, 빨간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것 같은가?"
이날 낮까지 서울에서의 개인 일정을 마무리한 선동열 감독은 자택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뒤 다음날로 예정된 선수단 상견례와 공식 취임식을 위해 광주로 향했다. 95시즌을 마지막으로 타이거즈의 품을 떠났던 그다. 그간 개인 일정으로는 고향인 광주를 자주 찾았지만, 다시 타이거즈로 복귀하기 위한 여정에 오른 이날은 느낌이 색달랐을 듯 하다. 선 감독은 광주로 오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직접 운전해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광주가 이렇게 가까웠나'하고 처음 느꼈다. 3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KIA를 어떻게 하면 좋은 팀으로 만들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광주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라는 선 감독의 말 속에서 고향 복귀에 대한 가벼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선 감독은 광주로 내려오며 내내 팀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워나갔다. 무슨 계획을 하게 됐을까.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외부에서 보니 KIA에는 젊고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마무리 훈련과 전지훈련을 통해 이같은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선 감독의 1차 계획은 '젊은 선수 발굴'이었다.
|
이날 오후 1시부터 광주구장에서 선동열 감독과 선수단의 공식 상견례가 열렸다. 원래 계획은 오후 2시에 KIA자동차 연구소 내 대강당에서 취임식 및 공식 상견례를 치르기로 했었지만, 선 감독의 요청으로 취임식에 앞서 상견례를 먼저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선 감독은 "행사장에서 양복을 입고 선수들을 만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도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운동장에서 먼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겠다"고 요청했다. 의미없는 행사를 지양하고, 감독과 선수로서 직접적인 만남을 원했던 것.
상견례 시간보다 거의 1시간 일찍 야구장으로 나온 선 감독은 감독실에서 등번호 '90'이 새겨진 유니폼을 처음 입었다. 상당히 낯설어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기자에게 "어때? 잘 어울리나? 하도 오래 파란색 유니폼(삼성)을 입다보니 빨간 타이거즈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지 모르겠네"라며 대형 거울 앞에 스스로를 이리저리 비춰봤다. "점퍼를 벗어야할까? 사진기자분들이 점퍼를 입으면 별로 안좋아하더라고"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완전히 유니폼을 입고 감독실을 나설 때부터 선 감독은 다시 당당한 지휘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
이윽고 선동열 감독은 선수단과 조우했다. 선수들은 미리부터 덕아웃 앞쪽에 둥그렇게 둘러서 감독을 기다리다가 선 감독이 모습을 보이자 박수로 환영했다. 선 감독이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을 밟은 것은 지난 95년 9월26일 롯데와의 경기 이후 16년 여 만이다. 당시 선 감독은 선발 조계현의 뒤를 이어 7회 1사에 등판해 2와⅔이닝 무안타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감회가 새로운 듯한 표정을 지은 선동열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야구를 하게 되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라고 첫 소감을 밝혔다.
선 감독은 이어 "상견례에서는 여러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KIA는 어느 한 선수의 팀이 아니라 모든 선수의 팀입니다. 팀을 위한 희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적절한 야구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희생번트'입니다. 내가 희생해 다른 선수들 한 베이스 더 가게 하는 야구를 해야 합니다"라고 팀워크를 강조했다. 더불어 선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의 역할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선 감독은 "베테랑들이 이끌어줘야 합니다. 감독이나 코치가 이끌어가는 야구는 한계가 있습니다. 베테랑들이 솔선수범하고 후배들이 따를 때 팀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와의 상견례를 마친 선동열 감독은 다시 말끔한 체크무늬 양복으로 갈아입은 채 공식 취임식이 열리는 KIA자동차 연구소로 이동했다. 이 취임식을 통해 선 감독은 공식적으로 KIA 제7대 감독으로 나서게 된다. 이 장소는 지금까지 서재응과 최희섭, 한기주 등 굵직한 선수들이 입단 기자회견을 열었던 곳이다. 그만큼 KIA에서 이번 선 감독 취임식에 들인 공을 알수 있는 대목.
이삼웅 사장과 김조호 단장 등 내빈과 수많은 취재진, 그리고 KIA자동차 연구소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선 감독은 유니폼과 모자를 이 사장으로부터 받아 입었다.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자 현장에서는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잠시 후 선 감독이 단상에 올랐다.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새로 취임한 선동열입니다"라는 첫 인사가 나오자 현장에 참석한 KIA자동차 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선 감독을 바라보는 광주 지역 민심이 그대로 나타난 것. KIA 관계자는 "시내 일부 식당등에는 '선동열 감독님의 취임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도 붙었더라"라며 고향 민심이 대단히 고취됐다고 전했다.
선 감독의 취임사는 이어졌다. 선 감독은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보며 "취임사를 해보는 것이 지도자로서 처음입니다. 먼저 16년 동안 못 입었던 고향 유니폼을 입게 해주신 이삼웅 사장님 이하 KIA 관계자 여러분게 감사드립니다. 내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 팀에 예전 타이거즈 정신을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야구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정신력과 근성 만큼은 상대를 압도하도록 정신 재무장에 나서겠습니다"라며 과거의 유산을 잇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1번째 우승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선수단이 똘똘 뭉친다면 머지않아 그 날이 다가옵니다. KIA가 다시금 한국 최고의 명문 구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취임사를 마쳤다. 박수와 함성은 또 다시 우렁차게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