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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근우, 박재상의 유치한 천재놀이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1-10-12 22:15


박재상(왼쪽)과 정근우의 경기장면. 스포츠조선DB

포스트시즌을 취재하다 보면 양팀 덕아웃의 희비쌍곡선을 명확히 느낄 때가 있습니다.

워낙 큰 경기다 보니 한 게임에 따라 분위기가 휙휙 바뀝니다. 1차전에서 패한 뒤 SK 덕아웃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주장 이호준을 비롯한 선수들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가라앉은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면 2차전에 앞서 KIA 선수들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있었습니다. 행동도 더욱 여유로웠고, 인터뷰도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2경기를 더 치른 이날 양팀 분위기는 180도 바뀌어 있었습니다.

KIA 선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와 라커룸을 왕복했습니다. 반면 SK 선수들의 입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걸쭉한 입담을 과시하는 이호준을 비롯해 정근우 송은범까지 취재진과 담소를 나눴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박정권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박정권은 취재진을 향해 "제가 어떻게 할까요. 인터뷰 한번 해 드릴까요"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심지어 인터뷰를 너무나 어색해하는 박희수를 취재진이 둘러싸자, 지나가면서 "이제 (박)희수에게 슬슬 (취재진이) 몰리기 시작하네"라고 추임새를 넣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준 선수는 박재상이었습니다.

지난달 페넌트레이스에서 박재상은 자신의 휴대폰에 정근우의 별명인 땅콩을 지우고 '천재'라고 등록했다는 사연이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왼쪽 늑골 부상 이후 36일 만에 복귀한 정근우가 곧바로 맹타를 터뜨리자, 재활을 하고 있던 박재상이 전화를 통해 "넌 천재야. 니 별명 땅콩에서 천재로 바꿨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박재상은 "와~ 정말 근우는 대단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근데 플레이오프에서 제가 잘 치니까 근우가 도리어 나보고 '천재'라고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사실 왼쪽 종아리 통증으로 고생했던 박재상 역시 19일 만인 지난 6일 광주 KIA전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4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준플레이오프에서도 2차전 결정적인 3루타를 쳐내며 분위기를 SK로 끌어당기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정근우가 "너도 천재"라고 화답하면서 똑같이 휴대폰의 이름을 천재로 바꿨다는군요.


하지만 살짝 유치하긴 했습니다. 1982년생인 그들은 올해 한국나이로 딱 30세입니다. 이 나이의 두 남자가 서로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 '천재 놀이'를 하고 있다니.

그러나 4차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습니다. 둘이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네요. 둘은 3회 찬스를 만들었고, 5회에도 그랬습니다. 결국 6회 정근우가 2사 후 중전안타를 친 뒤 도루를 성공하더니, 박재상이 곧바로 좌전 적시타를 치네요. 인정합니다. 유치한 '천재 놀이', 인정해야 겠습니다. 광주=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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