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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넌트레이스 마지막을 앞두고 가진 10대1 인터뷰의 주인공은 롯데의 기적을 만들고 있는 양승호 감독이다. 초반 부진을 딛고 일어서 롯데구단 역사상 첫 페넌트레이스 2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질문자가 선수부터 감독까지 다양했다. 가장 많이 궁금해한 것이 초반 부진 때 어떻게 그 부담을 이겨냈는가였다.
-주장으로서 올시즌 팀을 돌이켜보면 참 신기한 게 감독님께서는 정말 화가 나실 법한 상황에도 단 한 번도 선수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분명 감독님께서도 스트레스를 푸셔야 할 때가 있었을텐데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셨나요. 혹시 가끔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들에게 화풀이 하신건 아니세요? ㅋㅋ(롯데 홍성흔, KIA 나지완)
스트레스는 혼자 집에서 풀어. 부산에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야구인들을 만나면 야구 얘기가 나오니까 집에 가서 혼자 곰곰히 게임을 반성하고…. 잠이 정 안오면 소주 한잔 먹고 자. 그리고 지나간 건 생각 안해. 나지완과는 기억에 남는게 있어. 지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지명이 안됐을 때 너의 지인이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물어보더라구. 그때 "야수니까 대학 가서 4년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해준 적이 있지. 그 이후로 관심있게 봤어. 단국대 가서 승승장구 할 때 내가 뿌듯해지더라. 조카같은 느낌이랄까. 너 4학년 때 내가 고대 감독 처음 할 때라 직접 경기하는 것을 많이 봤는데 그때 홈런왕도 되고 활약이 대단했지. 배팅만으론 프로에 가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
코치는 선수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감독은 선수들이 흐트러진 것을 잘 잡아주는 역할이지. 고등학교 때처럼 군기 잡고 1게임을 하는 게 아니고 133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이 처음이나 끝이나 흔들림이 없어야 선수들도 믿고 따라준다고 봐. 믿음을 주기 위해선 속이 상해도 감독은 포커페이스가 돼야 한다.
-롯데와 LG는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팀인데 2006년 LG 감독대행 때와 비교해서 어느 팀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심한가요.(LG 차명석 코치)
LG 감독대행과 지금의 목표는 달랐지. 그때 나는 젊은 선수를 키워야겠다는 확신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어. 그러나 롯데에선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는 하늘과 땅 차이야. LG때는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팬과도 가까워 팬들이 격려를 많이 해주셨는데 여기서는 야구인들 외에는 지인도 없다보니 위로를 받을 입장도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것을 혼자 이겨내야 했지.
-열성적인 팬들이 뒤에 있다는 게 포스트시즌을 앞둔 지금도 부담이 되시는지요. 솔직한 심정은 어떠신가요.(두산 장원진 코치)
팬들은 페넌트레이스가 아니라 끝(포스트시즌까지) 성적을 얘기하잖아. 팬들이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승패 갈림길에선 욕을 먹을 수 있는게 감독이야. 플레이오프에서 1게임, 1게임 선수들과 감독이 후회하지 않는 게임을 하면 팬들도 박수를 쳐주지 않을까 생각해.
-초보 감독으로서 주변 얘기들이나 악성 댓글이나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초보로서 고충을 겪고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 취미 같은 게 있는가. 또 어떤 마인드를 갖고 이겨냈는가.(SK 이만수 감독대행)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야구장을 떠나면 야구 생각 안합니다. 야구 끝나면 야구와 관계없는 지인들과 자주 어울리는 편이죠. 지인들과 만나 다른 세상 얘기를 하다보면 잠시 야구를 잊을 수 있죠. 이만수 감독대행도 처음에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시간이 해소해줄 겁니다. 꿋꿋하게 가시길. 어려운 팀 맡아서 2위 싸움 같이 하는 감독으로서 끝까지 선전을 부탁드립니다.
-신일 중학교 때 감독님을 양선생님이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화는 내지 않으시고 의자를 걷어차곤 하셨죠. 그때 꽤 아프셨을 것 같은데 부끄러워 참으신 건지 궁금합니다.(넥센 강병식·신일중 시절 제자)
당시엔 프로선수 출신이 아마지도자를 할 수 없는 때라 공식적으로 감독을 할 수 없어서 야구부장으로 덕아웃 옆방에서 야구를 보며 작전지시를 했었지. 그때 지도자 생활하며 손찌검을 한적은 없었어, 맞은 사람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 기억엔 없어.(웃음) 대신 의자를 많이 찼었지. 누구라고 여기서 말을 할 순 없지만 그때 의자에 쇳덩어리를 붙여둬서 내가 찼다가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었지. 혹시 뼈가 부러졌을까봐 병원가서 검사를 받기까지 했어.
-감독님 속 가장 많이 썩이는 선수는 누구입니까. 가장 이쁘게 보이는 선수는 누굽니까. 각각 이유가 궁금합니다.(SK 이호준)
속을 썩인 친구는 솔직히 없어.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선수는 고원준인데 프로 선수로서 자기 컨트롤이 아직 필요해. 자기는 분명 열심히 하는데 선배, 큰 형,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아쉬운 점이 있지. 지금 몇 선발 투수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이끌 투수가 될 자질이 있어. 예쁘다기보다 가장 믿음이 가는 친구를 말하면 내 역할을 대신해준 홍성흔 주장이야. 내가 선수들에게 할 얘기가 있고 못할 얘기가 있는데 못할 부분을 주장이 잘 통솔하지 않았나 싶어.
-작년 겨울 감독 취임하셨을 때 축하전화를 드렸을 때 저에게 "계약 안했으면 우리 팀 와서 코치 해라"고 말씀하셨는데 진심이었나요.(삼성 진갑용)
진갑용은 이젠 배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웃음). 선수 좀 더 하고 나중에 고향 부산에 와서 봉사하는게 순리 아니겠냐. 당시엔 농담이었지만 나중엔 고향에 와서 봉사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은 나의 진심이다.
-이런 질문 하고 싶지 않는데 주위에서 궁금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질문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게. 옛날에 자네와 내가 트레이드되고난 이후 나는 선수생활을 오래했고, 자네는 일찍 끝내고 말았는데 솔직한 심정이 어땠는가.(한화 한대화 감독)
트레이드 되고서 한 감독은 해태에서 4번타자로 몇번이나 우승하고, 톱클래스 선수가 됐는데 난 은퇴해서 신일중 감독을 했었지. 그때 가장 가슴 아팠던게 잠실에서 OB와 해태 경기를 선수들과 단체관람 갔을 때 "내가 저기 해태 4번타자와 트레이드된 선수다"라고 했더니 애들이 아무도 안믿더라구. 당시 제자들이 조성민 강 혁 조인성 김재현 등이었는데 믿는 선수들이 하나도 없었지. 올시즌 초반 같이 마음 고생하다가 지금은 난 2위, 자네는 5위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 3경기밖에 남지 않았잖아. 친구니까 나 한번 도와주게. 나도 나중에 한번 도와줄게.(씩 웃더니) 이건 농담이고. 한 감독, 남은 3경기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