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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강팀 감독이 모두 옷을 벗게 됐다.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김성근 감독이 예고 사퇴를 함에 따라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팀들의 사령탑이 모두 유니폼을 반납하게 됐다. 굳이 옛 기록을 찾아볼 필요도 없다. 보나마나 사상 초유의 사태다.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은 롯데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지만 지난 겨울 재계약에 실패했다. 경질 케이스다. 로이스터 전 감독이 롯데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건 사실이지만, 구단은 더 많은 걸 원했다.
지난 6월13일에는 김경문 전 감독이 베어스 유니폼을 벗었다. 뜻하지 않은 팀안팎의 문제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팀성적이 추락하자 김경문 전 감독은 미련없이 용퇴를 결정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마지막으로 김성근 감독이다. 물론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감독직을 맡는다. 하지만 '사퇴가 예정된' 감독은 이전까지의 입지와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구단 아닌 감독이 결정한다
특히 김경문 전 감독과 김성근 감독의 케이스는 프로야구가 지금껏 보여줬던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라 눈길을 끈다.
김경문 전 감독의 경우 구단과 미리 상의를 했고, 프런트에선 적극적으로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전 감독은 단호하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했다. 추후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지도자가 용퇴를 결정한, 아마도 프로야구 첫 사례일 것이다.
김성근 감독도 비슷하다. 김 감독은 아예 구단에 본인이 통보를 해버린 케이스다. SK 구단도 당황해하면서 감독을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난 고집이 세다"면서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로야구가 생긴 뒤 늘 그랬다. 감독은 '잘리는' 직업이다. '스스로 걸어나가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전혀 다른 상황이 2개월의 간격을 두고 잇달아 벌어진 것이다.
두 감독은 공통점이 있다. 최근 몇년간 서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면서 치열한 접전을 펼치곤 했다. 그 과정에서 SK와 두산의 빠르고 강한 야구는 한국프로야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김경문 전 감독과 김성근 감독 모두 지도자로서 크게 인정받아왔다.
결국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단어중 하나는 '자신감'이다. 앞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감독은 당장 자진사퇴를 하더라도 훗날 현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누구보다 큰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평소 구차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공통된 스타일이 겹치면서 감독의 자진 사퇴란 보기 드문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인천=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